2008년 세계를 휘청이게 한 금융위기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아니 10년 사이 위기는 더 깊고 넓어졌다. 자본가들의 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보통 사람들은 양극화, 불평등에 함께 저항하는 대신 각자도생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는 ‘모두 잘 살아야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연대와 공존의 가치를 일깨웠다. 경제 역시 다르지 않다.
“코로나19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거진 문제점의 트리거(방아쇠)가 돼 자본주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했어야 할 일에, 플러스로 더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남겼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코로나19란 각성제 덕일까. 모든 청년들에게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자산을 역설한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시작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보려는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신간 2권을 모아봤다.
거대해질수록 위기는 커진다
“자이언티즘(Gigantism)이 문제다.” 이코노폴리스의 최고경영자인 저자의 결론은 명쾌하다.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하진 않지만,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과도한 성장이 자본주의를 망가트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재 세계경제는 ‘덩치’로 승부하고 있다. 기업은 기를 쓰고 몸집을 불린다. 규모가 커져야 정부나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망할 위기에 처하더라도 정부가 도와줄 거란 보험 성격도 깔려 있다. 저금리와 부채로 유혹하며 돈을 풀기에만 급급한 중앙은행, 실물경제는 돌보지 않은 채 재정지출로 경기부양에만 집착하는 국가 역시 ‘기형적 성장’의 조력자다. 규모의 대형화는 경제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낳는다.
저자는 세계경제를 유럽축구연맹(UEFA)의 ‘챔피언스리그’에 빗대기도 한다. 유럽 최강의 축구 클럽을 결정하는 챔피언스리그는 몇몇 상위 팀이 막대한 상금을 휩쓰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탈락한 팀에도 상금을 나눠 줬던 과거엔 작은 나라의, 작은 리그에서 뛰던 가난한 클럽도 명문 구단을 꺾으며 숨은 영웅이 탄생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룰이 바뀐 뒤엔 자취를 감췄다. 상위 클럽들은 경쟁 클럽들을 좌절시키기 위해 당장 경기에 출전시키지도 않을 유망 선수를 사재기하며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에만 급급하다.
문제는 승자독식으로 만들어진 거대함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는 데 있다. 시장의 경쟁이 사라지면 자본주의의 미덕인 효율과 혁신의 동력도 꺼지기 마련이다. 최초의 주식회사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도 부패와 부실로 망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스탠더드 오일 등 굴지의 기업들도 시장에서 최대, 최고 규모를 찍은 이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더욱 절망적인 건, 자이언티즘이 경제를 넘어 환경, 복지, 시민단체 등 사회 전분야에서 만능키처럼 적용되고 있다는 것. “거대해질수록 위기 또한 커진다.” 저자는 더 작고, 느리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경제가 바뀔 때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한다.
청년들에게 민주적 지참금을
‘그래서 어떻게?’ 라고 묻는다면, ‘모든 것이 바뀐다’를 집어 들면 좋을 것 같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크리스티안 펠버는 ‘공동선 경제’를 내세운다. 우리에겐 아직 설 익어 보이는 개념이지만 그가 창립한 ‘공동선 경제’ 운동에 전 세계 50개국 2,300개 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책은 경제에 관한 기존 상식과 정의를 깨부순다. 공동선 경제란 개념 자체부터 그렇다. 우리는 경제활동의 목표는 이윤 추구라고 익히 배워왔다.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민주적 국가들은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표로 ‘공동선’을 헌법에 적시하고 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이윤과 경쟁추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공동선과 협력 추구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고 저자는 상기시킨다.
책은 공동선을 실현할 법률과 정책을 포함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꽤 유익하다. 재무적 대차대조표 대신 ‘공동선 대차대조표’를 통해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세금 혜택, 은행 대출 등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인센티브와 연계한다는 발상은 설득력 있다.
저자는 또 상속에 제한을 둬 ‘세대기금’을 조성한 후 아무것도 상속 받지 못한 채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민주적 지참금’ (democratic dowry)’의 형태로 일정 금액을 나누어줄 것도 제안하는데, 피케티가 말한 청년 기본자산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윤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돈은 공공에 봉사하는 공공재다.’ ‘나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의 자유다.’ 책은 자본주의의 대전제를 바꿔나가면, '모두를 위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을 위해 부동산과 주식에 매진하며 신자유주의의 노예가 될 것인지, 새로운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도전의 주체가 될 것인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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