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딛고 3월 이후 줄곧 상승세를 타던 세계 증시가 지난 달부터 '조정기'에 들어섰다. 대표적인 위험자산인 주식이 주춤하자 투자자들의 관심은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과 금, 엔화, 비트코인 등에 쏠렸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식뿐 아니라 채권이나 금 등 안전자산까지 동반 부진에 빠진 것이다.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함께 보유하며 경기 변동에 대응해온 투자자들은 "자산가치를 지킬 피난처가 없다"며 당황해 하는 모습이다.
더 내려갈 곳 없는 국채금리
7일 금융권과 외신 등에 따르면, 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가격의 변동폭은 지난 9월 한 달 내내 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세계로 번지기 시작한 3월 초, 10%대 상승세(국채금리 급락)를 보이며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에 통상 자산가격 상승과 하락 모두를 염두에 둔 '균형 잡힌 투자 전략'으로 통용되는 ‘60(주식) 대 40(채권)’ 투자도 최근에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는 분위기다.
원인은 기준금리가 이미 바닥까지 내려와 있어서다. 이미 일본 국채는 1990년대, 독일 국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겪어온 상황이기도 하다.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이 제로 혹은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한 이후 채권 수익률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수준까지 밀렸기 때문에 채권 가격도 증시 부진을 맞아 상승(채권금리 하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초저금리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각국이 막대한 돈을 풀었음에도 여전히 물가가 상승할 기미가 없어서다. 유로존의 8월 근원 인플레이션율(농산물ㆍ에너지 등 변동성이 심한 상품을 제외한 물가)은 0.4%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역시 6일 연설에서 "(금융시장에 대한) 현재의 정책 개입은 모자란 것보다 지나친 것이 낫다"며 극도의 저금리 기조를 당분간 유지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금도 비트코인도... 안전자산이 없다
선진국 국채의 안전자산 기능이 사라지자 투자자들은 백방으로 대안을 찾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신통한 자산이 없는 상태다.
또 다른 안전자산의 간판 격인 금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대규모 달러 공급 속에 가치 상승이 예상되면서 올해 온스당 2,000달러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9월부터는 오히려 하락세를 타면서 1,900달러대에서 큰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디지털 금'으로 불리며 역시 증시와 반대로 움직이곤 했던 비트코인도 9월 들어 증시와 동반하락했다.
금은 채권과 달리 고정 수익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 비트코인은 지나치게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노르디아자산운용의 세바스티안 갈리 선임 거시전략가는 “객관적 가치 평가가 불가능하고 폭락장 때 일관성 있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전자산으로서) 금보다는 현금이 낫다”고 말했다.
국제 통화 가운데 미 달러화보다 더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일본 엔화 가치 역시 9월 들어서는 달러화 대비 특별한 우위를 보이지 못했다. 미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93대까지 낮아졌지만, 일본의 기관투자자들이 그만큼 많은 해외자산을 매입하면서 엔화의 상대적인 가치 상승이 상쇄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기야 전문 투자자들은 그간 안전자산으로 생각하지 않던 자산들까지 분산투자 수단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보험계열 자산운용사인 프린시펄은 연준이 회사채 시장 지원에도 나선 것을 들어 '투자등급 회사채'가 잠정적인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스위스 PB 전문 은행 롬바드오디에는 상대적 고금리여서 위기 시 수익성이 기대되는 중국 등 '신흥국 채권'에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