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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정보 유출해도 은행 책임은 못 묻는다?

입력
2020.10.08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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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은행과의 거래는 매우 '사적'이다. 어떤 은행과 얼마만큼의 거래를 하는지는 본인과 은행만 알 수 있다. 설사 본인이라 해도 그 정보를 알려면 본인임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 보여주는 은행도 '고객의 동의'부터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런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나라에서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금융실명법)'까지 만들어 뒀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런 약속을 종종 무시한다.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손실 우려가 커지던 지난해 8월, 하나은행 직원들은 DLF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1,000여명이 소유한 계좌 1,936개의 거래 정보를 고객 동의 없이 자문 법무법인에 제공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은행과 법무법인은 DLF 피해자들이 제기할 민원을 예상하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어떻게 조직을 방어할 지를 위해 허락 없이 고객정보를 이용한 것이다.

금융당국도 이 사안을 금융실명법 위반이라고 봤다. '고객의 금융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때는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강제 조항(제4조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당국은 △피해자가 동의하기 어려운데도 동의를 받지 않았고 △제기된 민원이 6건에 불과했는데 1,000여명 금융정보를 먼저 제공한 점을 위법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 조항은 금융사가 아닌 '금융사 직원'만이 대상이다. 그래서 하나은행은 아예 제재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직원들이 조직 방어를 위해 벌인 일인데도, 유출을 '실행한' 직원 4명만 최근 제재를 받았다. 금융당국 내에서조차 "은행에도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인데, 법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부족한 법 탓에 벌을 못 준다고, 죄까지 없는 건 아니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 고객 정보를 이용했다면, 법을 떠나 '신의'로라도 하나은행은 먼저 고객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은행은 사과하지 않고 있다.

행여 은행권에서 이번 제재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같은 실수를 막으려면 법의 허술함도 조속히 손 볼 필요가 있다.

경제부 이상무 기자

경제부 이상무 기자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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