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의 동원은 샤츠슈나이더(Schattschneider)라는 학자가 개발한 개념이다. 그는 특정 그룹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가치, 신념, 인식을 활용하여 상대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현상을 이 용어로 풀어냈다.
최근 북한 해역에서 사살당한 이모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이례적’이라 평가했다가 정부, 여당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몇몇 언론은 우리 사회 일부의 현 집권세력에 대한 ‘편견’을 최대한 동원해 공격한다.
이런 식이다. 북한이 ‘자혜로운 통지문’ 한 장을 보내오자 정부?여당이 감읍하였다. ‘최고 존엄’께서 ‘대단히 미안하다는 뜻’을 ‘신하와 백성’에게 전하는 형식을 취했음에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선을 넘는 수사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 여당이 북한의 사과문을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긴 측면은 있다. 북한의 사과가 없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교착 상태에 있는 평화 이니셔티브가 영영 실종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그 정도로 막 나가기는 부담스러웠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그러나 이것을 두고 북한에 감읍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편견을 동원하는 중에서도 악의적인 편에 속한다. 그동안 북한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도 많이 해서 우리 국민 대다수가 ‘반북’을 넘어 ‘혐북’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 정치인이다. 북한을 옹호한다는 프레임에 걸려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바로 들릴 것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젠 대중들이 정부, 여당이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라 북한과 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편견을 동원한 공격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음을 알아 가고 있다. 얄팍한 편견의 동원 수법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치의식이 높아졌다는 거다. 앞으로 편견의 동원 기획자들은 이 수법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좀 해야 하게 생겼다. 역풍이 불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대중의 지배적인 신념과 가치가 바뀌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활동적인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그룹이 인구구조에서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자녀들은 군에 가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인구 그룹의 정치성향이 진보적인데, 자식들이 군에 가있으면 평화 이니셔티브에 대한 지지세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들이 안보와 관련해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되도록 군사적 긴장상황이 조성되지 않게 하되, 만에 하나 전쟁이 나면 병사들이 자신감을 갖고 싸울 수 있도록 좋은 무기체계를 구비해주라는 것이다. 평화 이니셔티브와 강한 국방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그렇다고 계속 으르렁거리는 게 상책이 아니라는 것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판이 바뀌고 있는데 유신 시절에나 먹힐 편견을 동원하는 전략을 쓰는 것은 판단 착오다.
울화가 치밀지만 북한의 사과를 ‘이례적’이라는 정도로 평가해주고, 공동 조사하는 방안을 찾는 게 뭐 그리 잘못 됐는가.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일전 불사한다는 태도로 나가는 것은 부담스럽다. 자신들도 결국에는 타협할 거면서 큰 스트레스를 준다.
그럴 바에야 밖으로는 평화 이니셔티브를 주창하고, 안으로는 강군 육성을 지속하는 방향이 훨씬 지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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