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반대로 정부의 애초 정책 방향이 크게 뒤바뀌는 상황이 자주 반복되면서, 정부의 정책수립 기능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180석 의석의 거대 여당 체제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 지고 있는데, 정부가 여당에 지나치게 종속되는 현상을 막기 위한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여당 반대로 정책 뒤집기 다반사
5일 정치권과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기획재정부가 추진하려던 주요 정책 다수가 여당의 반대로 수정되거나 연기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당 뜻대로 결정된 1차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다. 당시 정부는 재정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소득 하위 70%에만 재난지원금을 주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여당이 전국민 지급을 밀어 붙였고, 결국 이를 관철했다.
연간 2,000만원 이상 주식 양도차익을 얻은 투자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려던 정부 정책도 여당의 개입에 크게 후퇴했다. 정부는 연 2,000만원 이상 소득자는 전체의 5%에 불과하다고 정책 취지를 설득했지만, "개인투자자의 사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는 여당과 청와대의 목소리에 결국 세금 부과 기준을 연간 5,000만원 이상으로 높이고 법 시행 시기도 2023년으로 1년 늦춰야 했다.
국가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한 재정준칙 발표도 여당의 반대 속에 계속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당초 지난 8월까지 재정준칙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여당이 `재정준칙 도입에 신중해 달라`는 의사를 표하자 발표 시기를 오는 5일로 두 달 이상 미뤘다.
여당은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재정준칙이 자칫 확장재정 정책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에 조만간 공개될 재정준칙 내용도 법적 구속력이 없는 느슨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대주주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도 정부안(3억원 이상)이 변경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입법 예고까지 마쳤지만, 동학개미들의 "대규모 매물에 의한 주가 악영향" 우려에 여당은 기재부에 법안 수정을 압박하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동학개미의 불만을 잘 알고 있다"며 "내년 4월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충분하게 더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당정 협의를 통해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당 개입, 긍정 효과도" vs "개입에도 원칙 필요"
수시로 반복되는 정책방향 변경에 정부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진다. 특히 거대 여당이 힘으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정책 입안자로서 무력감을 호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이 여당에 의해 수정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긍정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여론을 무시하고 정부 독단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여당 개입으로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이 완화되지 않았다면, 올해 모처럼의 증시 활력도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여당이 정부 정책에 개입하더라도 명확한 원칙과 기준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 정책이 여론에 따라 변경될 수는 있지만, 지금은 시행도 안 해보고 여론에만 맞추려는 분위기"라며 "여당도 정부를 협의 상대라기보다는 지시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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