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방문 자제' 분위기 속 귀성ㆍ성묘객 줄고
제주ㆍ해운대 등 유명 관광지는 '북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명절 풍속도마저 바꿔놓았다.
해마다 명절 연휴 전날부터 귀성 인파로 붐비던 서울역과 고속터미널이 연휴 내내 한산했고, 공원묘지를 찾는 성묘객의 숫자도 크게 줄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우려한 방역 당국이 고향 방문과 성묘 자제를 거듭 요청하고, 상당수 국민들이 이에 동참하면서다.
그러나 고향 방문과 성묘를 포기하거나 간소하게 마친 이들이 제주와 해운대 등 유명 휴양지와 산, 해변 등으로 몰리면서 당초 추석 연휴 기간 대규모 인파의 이동과 만남을 줄이려던 방역 당국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때마침 쾌청한 가을 날씨와 5일이라는 긴 연휴,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해외 여행마저 불가능해진 탓에 오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이 국내 관광지로 대거 몰린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일종의 '풍선효과'인 셈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줄어든 귀성객이 '추캉스(추석+바캉스)' 인파로 불어나면서 감염 위험을 높이는 아이러니는 연휴 기간 내내 이어졌다. 국내 대표적인 휴양지 제주의 경우 무려 25만여명의 여행객이 이번 연휴기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휴를 앞둔 지난 주말부터 김포공항을 비롯해 제주 노선을 운항하는 전국 공항이 크게 붐비기 시작했다. 특히, 제주공항의 경우 연휴 첫날인 30일과 마지막 날인 4일 하루 이용객이 4만명을 넘어설 만큼 북적이면서 방역 당국을 긴장시켰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제주의 이름난 해변과 오름, 한라산 등지로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는데, 이들이 타고 온 렌터카로 인해 인근 도로 곳곳이 주차장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다수 여행객들이 마스크는 착용했지만 앞뒤 간격을 유지하지 않고 줄지어 오름을 오르거나, 밀폐된 식당에선 밀접하게 앉아 취식을 하는 등 위태로운 장면도 연출됐다.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에도 한복 차림의 여행객들이 크게 몰렸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색색의 고운 한복이 빛을 발했고, 거리엔 모처럼 여유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곳 역시 거리두기는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여행객 입장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감염방지로 인해 임시 폐쇄된 점은 아쉬웠다.
비교적 접근성이 좋고 숙박시설이 밀집한 강원 해변과 부산 해운대에도 추캉스 인파가 줄을 이었다.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과 '커피 성지'로 유명세를 탄 안목 해변에 젊은 연인들이 몰렸는데, 인근 식당과 카페는 모처럼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멀리 떠나는 대신 가까운 곳에서 긴 연휴의 여유를 즐기려는 시민들은 서울 도심의 고궁과 공원을 찾았다. 경복궁과 남산한옥마을, 서울숲, 한강시민공원을 비롯해 대형 놀이공원 등에는 연휴 마지막날까지 붐볐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 채 차 안에서 드라이브인 방식으로 공연을 즐기거나 영화를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전국이 추캉스 인파로 북적이는 동안 쓸쓸한 연휴 풍경도 이어졌다. 경기 수원시 화홍문 인근 공원에는 가족 대신 혼자서 명절을 보내야 하는 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일 오후 공원 산책로 벤치에 줄지어 앉은 노인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기거나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날은 명절 연휴이자 세계 노인의 날이었다.
코로나19로 50년 만에 '합동 차례'가 취소되면서 실향민들도 먹먹한 연휴를 보내야 했다. 해마다 합동 차례가 열리던 경기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 앞에선 이따금 찾아 온 실향민 가족들만 조용히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등 쓸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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