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무역적자 폭 줄이기 위해?
속내는 中 우회수출 차단 노린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트남의 환율조작 여부를 가리겠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미중 갈등의 전장 중 하나인 동남아시아에서 최근 베트남을 향해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온 미국의 행보를 생각하면 갑작스런 강경책이 의아할 법도 하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은 직접적 보복이 목적이었던 중국과 달리 이번 조사에는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고 중국 견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속내가 담겼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4일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성명을 통해 “베트남의 환율조작 행위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며 “베트남 측 행위가 미국의 무역에 제약을 준다고 판단될 경우 무역법 301조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 당시 무역법 301조를 활용해 매년 3,700억달러(432조원)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중국처럼 즉시 보복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무역법 301조를 거론하면서 엄중 경고를 보낸 것이다.
미국의 강경 모드는 표면적으로 매년 급증하는 대베트남 무역적자 때문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2014년 349억달러 수준이었던 무역적자 규모는 2018년 두 배 가까운 603억달러까지 폭증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에는 전년 대비 24.5% 상승한 342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에 미 재무부는 지난해 5월 베트남을 환율조작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이어 미 상무부도 베트남을 통해 수출되는 철강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다.
잇단 제재 조치에도 미국이 굳이 공식 조사 카드까지 꺼내든 것은 결국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정황도 충분하다. 미국은 중국이 지난해 호찌민 등 베트남 주요 수출항구 인근의 공장과 부지를 대거 사들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무역갈등으로 대미 수출 직항로가 막히자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이들 항구로 보내 라벨을 ‘베트남산’으로 바꿔치기 한 뒤 우회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찌민의 한 무역업계 관계자도 “채용이나 시설 투자가 없는 베트남 내 중국 공장에서 라벨 바꾸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현지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전했다.
베트남도 미국의 의중을 간파하고 라벨 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 업체들의 불법 행위를 적극 단속하고 있다. 하노이 외교가 관계자는 “미국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을 적으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무역수지가 일부 개선되고 중국의 불법을 차단하는 베트남 정부의 대응이 나오면 상황은 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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