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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트럼프도 교훈을 줬다

입력
2020.10.0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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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군병원 인근에 도착해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에서 내리고 있다. 베네스다=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군병원 인근에 도착해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에서 내리고 있다. 베네스다=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을 접한 순간, 순전히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자면 독일어 ‘샤덴프로이데’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에서 묘한 쾌감 비슷한 걸 느낀다는 게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쨌든 이건 ‘진실’이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의 미나 시카라 교수를 비롯해 그간 샤덴프로이데 관련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 중 하나는 이런 감정이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니 그나마 위안은 되는 듯하다.

트럼프가 2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군병원으로 이송될 당시 백악관 직원들의 걱정스런 표정이 담긴 사진들에 눈길이 갔다. 누구랄 것도 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미국 CNN방송은 “백악관 인사들이 이렇게 마스크를 많이 쓴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불과 엿새 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자 지명식 때의 사진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 드물었다, 트럼프와 배럿을 포함해서. 당시 행사는 지금 슈퍼 전파의 계기로 추정된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트럼프 리스크’는 일상 용어가 된 지 오래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겨우 이 정도냐”는 비아냥도 입이 아플 정도다. 하지만 200년 이상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운용해온 미국 정치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그간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을 강도 높게 비난해온 민주당에서 실수로라도 절제의 선을 크게 벗어나는 언행이 나오지 않는 건 그만큼 정치 시스템이 탄탄하다는 방증이리라.

트럼프의 확진 소식이 전해진 뒤 미국 ‘한 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음모론 공방엔 쓴웃음이 난다. 하지만 동시에 ‘기획 감염’ 또는 ‘가짜 감염’ 가능성은 정말 없는 건가 싶은 생각이 조금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19를 거뜬히 이겨내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아니고서는 트럼프의 재선이 어려울 거란 얘기가 나오고 것과 무관치 않다.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 깜짝쇼)’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얘기가 괜히 나올까. 어쨌든 그가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미국 대선의 초점은 단연 ‘트럼프 건강 문제’가 되지 않았나.

터무니 없어 보이는 이런 억측은 그러나 연원을 따지자면 트럼프가 자초한 일이다. 그는 지난 4년간 ‘미국’과 ‘미국 대통령’에 대한 통념 내지 상식을 뿌리째 흔들었다. 워싱턴의 정치ㆍ외교안보ㆍ경제문법에서 한참 벗어난 그의 언행이 결코 기득권 옹호세력과의 대결 차원이 아님을 확인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트럼프 정치’가 온갖 음모론과 직간접적으로 닿아 있음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의 최측근들이, 친조카가, 인터뷰한 기자가 써내려간 ‘폭로’는 더 이상 놀라울 게 없다.

트럼프는 나이와 키ㆍ몸무게로 볼 때 전 세계 보건전문가들이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경고했던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한다. 중환자실 신세까지 졌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퇴원 후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한 건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더욱이 존슨은 트럼프보다 18살이나 적다. 트럼프를 향해 ‘진작부터 마스크라도 좀 제대로 쓰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어쩌면 전 세계는 그래도 트럼프한테서 과학을 무시하면, 기본조차 지키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교훈 정도는 얻은 듯하다.

양정대 국제부장 torch@hankookilbo.com

[기자사진] 양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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