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사람은 답을 찾는다, 봉태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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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사람은 답을 찾는다, 봉태규가 그렇다

입력
2020.10.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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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학로 블루칩’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이 공간, 사람, 사물 등을 키워드로 무대 뒤 이야기를 격주 월요일자에 들려드립니다.


2017년 연극 '보도지침'에서 배우 봉태규는 군사 정권의 보도지침에 맞선 기자 주혁을 연기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월간 '말' 지에 보도지침을 폭로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아이엠이 코리아 제공


봉태규 [인명] 배우, 작가, 아버지, 조용히 울 줄 아는 사람

배우이자 작가인 봉태규는 나랑 동갑이다. 그를 처음 영화에서 보았을 때, 화면을 노려보는 불온한 눈빛에 반했던 것 같다. 프레임 안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여차하면 그 밖으로 뛰쳐나와 버릴 것 같은 에너지가 있었다. 어딘가 삐딱한 눈, 저항하는 눈, 만족하지 못하는 눈, 그런 눈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떻게 살지 몰라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던 시절, 봉태규의 눈을 볼 때마다 숨통이 트였다.

“전 연극하면서 재미있었던 적이 없어요. 제가 이걸 하면 재미있을까요. 제가 이 역할에 어울릴까요. 지금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리는 의미는 뭐죠.”

연극 ‘보도지침’ 캐스팅을 위해 만났을 때, 그는 상당히 많은 질문을 던졌고, 난 이상하게 신이 났다. “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고, 이런 눈빛의 배우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당신이고, 사실 우린 동갑이다.” 나의 엄청난 횡설수설을 때론 묘하게, 때론 딱하게 바라보던 그는 고맙게도 그날 밤 “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봉태규는 늘 연기에 대해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했다. “난 연기를 하지만 꾸미지 않고 나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그것 또한 연기가 아닌가. 그럼 어떻게든 꾸미는 것이 맞는 걸까. 그럴 거면 아예 제대로 꾸며서 연기를 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렇다면 그 모습은 진정한 내가 맞는 걸까.”

난 계속 횡설수설했다. “사람의 얼굴은 여러 개일 것이고 연기는 그 중 하나를 꺼내 쓰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럼 어떤 얼굴도 자기 자신이 아닐까. 그런데 그 얼굴이 원래부터 있던 얼굴인가. 아니면 새로 만든 얼굴인가. 새로 만들면 자기 자신이 아닌가. 미안해. 내가 이래서 배우를 포기했어.”

봉태규는 밤마다 전화를 걸어서 질문을 던졌고, 횡설수설은 계속됐다. 어느 날 밤, 그가 불쑥 말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아.” “내가 살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게 다 연기로 나오는 것 같아.” “연극이 참 좋네.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시간이 변하니까 내 생각도 변하고 있을 거고, 그럼 매번 다른 진짜가 나올 수 있겠네.” “연기가 점점 재미있어져.”

봉태규는 연습 내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술을 한 잔도 안 마시지만 늘 자리에 와서 어울렸다. 말하기보다 듣는 쪽이었다. 남의 얘기를 경청했고 나직하게 몇 마디를 보탰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몸에 배어 있었다.

봉태규는 늘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법정에 선 주인공이 아이의 돌잔치에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뿐 아니라, 모든 부모의 아이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게 너무 슬프다고, 견딜 수가 없다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 봉태규는 방송에 자주 나오며 다양한 역할을 보여준다. 난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듣는다. 가끔 누군가 묻는다. “봉태규는 어떤 사람이냐”고. 난 그때마다 딱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함께 뮤지컬 ‘앤’을 을 보러 갔을 때, 옆자리에서 조용히 울고 있던 모습을. 우는 소리가 방해될까 봐 숨죽여 울음을 참던 모습을. 나한테는 봉태규가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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