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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갔는데 미래가 보인다...버려진 공간의 유럽식 재해석

입력
2020.10.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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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유럽의 재탄생 공간 미학 여행

기차역으로 설계했다가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오르세 미술관은 작품 외에도 공간의 위치적 기능을 최대치로 활용한다. 파리의 낭만에 젖어 든다. ⓒ강미승

기차역으로 설계했다가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오르세 미술관은 작품 외에도 공간의 위치적 기능을 최대치로 활용한다. 파리의 낭만에 젖어 든다. ⓒ강미승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 재탄생된 공간은 퇴물이 된 기존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그 위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무두질하듯 닦아 노련한 성숙미를 선보인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을 꿈꾸게 한다. 과정은 비록 더디고 시행착오를 거듭할지라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고서.

독일 뒤스부르크의 랜드스케이프 파크(Landschaftspark Duisbrug-Nord)...사람과 쇠붙이가 함께 뒹군다

뒤스부르크 랜드스케이프 파크의 전형적인 모습. 녹슨 철근을 덩쿨식물이 덮고 있다. ⓒ강미승

뒤스부르크 랜드스케이프 파크의 전형적인 모습. 녹슨 철근을 덩쿨식물이 덮고 있다. ⓒ강미승

에코와 공장, 이 교집합 없는 부조화를 현실화시킨 뒤스부르크의 환경공원이다. 첫인상은 매연이 막 뿜어 나올 듯한 220헥타르(66만5,500평)의 철강 및 석탄지대다. 1985년경 환경 오염의 주범 지대로 버려진 곳이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환경을 보존하는 공원으로 정반대의 활로를 찾았다. 1994년부터 공원은 사람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스산한 공장 사이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청년, 거친 암벽 위로 앙칼진 힘줄을 자랑하는 클라이머, 철제 미끄럼틀 아래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꼬맹이가 이곳을 진정한 환경공원으로 만드는 주역이다. 푸른 잔디 대신 생태적 사고가 깃든, 재탄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그렸다고나 할까. 이곳은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았다. 번뜩이는 축제와 행사로 사람을 모으는 대신 온라인으로 사진 갤러리를 열고, 공원의 밤을 소리와 빛으로 물들이는 등 다른 활로를 찾았다. 24시간 꿈틀대는 공간이다.

1991년부터 환경 건축가인 피터 라츠를 필두로 5개 기획팀이 버려진 석탄공장을 어떻게 활용할 지 머리를 모았다. ⓒ강미승

1991년부터 환경 건축가인 피터 라츠를 필두로 5개 기획팀이 버려진 석탄공장을 어떻게 활용할 지 머리를 모았다. ⓒ강미승


‘기억’을 디자인의 포인트로 잡았다. 최대한 과거 당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것. ⓒ강미승

‘기억’을 디자인의 포인트로 잡았다. 최대한 과거 당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것. ⓒ강미승


공원의 진정한 생명은 방문자의 발끝으로부터 나온다. ⓒ강미승

공원의 진정한 생명은 방문자의 발끝으로부터 나온다. ⓒ강미승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시민들이 공원을 살린 진정한 주인공이다. ⓒ강미승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시민들이 공원을 살린 진정한 주인공이다. ⓒ강미승


스위스 취리히의 시프바우(Schiffbau)… 문화의 옷을 차려 입고

쮜리히 웨스트의 시프바우의 밤 분위기는 할렘의 뒷골목을 연상시킨다. ⓒ강미승

쮜리히 웨스트의 시프바우의 밤 분위기는 할렘의 뒷골목을 연상시킨다. ⓒ강미승

옛 할렘의 서먹한 기운이 감돌던 도시 속의 그늘, 취리히 웨스트. 매몰차게 버려지고 차디찬 무관심의 온상이던 공장 지대가 스튜디오와 갤러리, 대학 등으로 성공적인 성형수술을 한 곳이다.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둔 그들의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시프바우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00년대 취리히 웨스트 재개발 역사의 시작이 된 복합문화공간이다. 그런데 본판이 비슷하다. 옛 조선소의 거칠었던 풍광을 민망할 정도로 살려 두었다. 덕분에 높은 천장 아래 노출된 콘크리트와 파이프가 섬뜩할 만도 하건만, 다른 현대적 장식물을 압도한다. 취리히에서도 최고로 통하는 시프바우 내 레스토랑 ‘라 살르(LaSalle)’는 시간과 창조의 진정한 가치를 음미하게 한다. 투박하고 거친 과거가 얼마나 독보적인 세련미로 탄생할 수 있는지를.

경제 정책의 변화에 따라 1960년대까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던 이곳은 20년 후 퇴물이 되었다. 지금은 교육과 문화의 옷으로 단장했다. ⓒ강미승

경제 정책의 변화에 따라 1960년대까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던 이곳은 20년 후 퇴물이 되었다. 지금은 교육과 문화의 옷으로 단장했다. ⓒ강미승


‘라 살르’ 레스토랑 실내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같다. 둘러볼수록 궁금증이 더해지고, 화수분처럼 뭔가가 나온다. ⓒ강미승

‘라 살르’ 레스토랑 실내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같다. 둘러볼수록 궁금증이 더해지고, 화수분처럼 뭔가가 나온다. ⓒ강미승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 화려함의 가슴 뛰는 재해석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외관. ⓒ강미승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외관. ⓒ강미승

뇌사 상태의 기차역이었다가 1986년에서야 세계적인 미술의 산실로 생명력을 얻은 오르세 미술관. 화력발전소에서 변신한 영국의 ‘테이트 모던’도 그 궤를 같이한다. 고흐와 고갱, 마네 등 거장들이 자리 잡기 전, 이 공간은 훈장처럼 명예와 불명예를 오르내렸다. 오르세 궁이 화재로 소실된 후 파리 오클레앙 철도 회사의 기차역 설계가 지금 미술관의 전신. 건축가끼리 경쟁을 붙일 때 이들의 주문은 ‘가장 새롭고 가장 화려하게’였다. 당시엔 칭송을 받았다. 전쟁과 경제 사정의 변화로 이 주문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때, 프랑스 정부는 미술관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미술관 문을 열면 높고 둥근 천장 유리 사이로 자연광이 쏟아진다. 빛의 온도를 머금고 탁 트인 홀은 가슴을 뛰게 한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에 걸맞은 수준이라는 듯 19세기를 총망라한 전시 작품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입구에서 반대편까지 거대한 홀을 아우르는 건축미에 일단 멈춤. 여러분은 막 '인상파 성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강미승

입구에서 반대편까지 거대한 홀을 아우르는 건축미에 일단 멈춤. 여러분은 막 '인상파 성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강미승


오르세 미술관은 작품 외에도 공간의 기능을 최대치로 활용한다. 저절로 파리의 낭만에 젖어든다. ⓒ강미승

오르세 미술관은 작품 외에도 공간의 기능을 최대치로 활용한다. 저절로 파리의 낭만에 젖어든다. ⓒ강미승


독일 에센의 졸버레인(Zollverein)… 없던 영감이 팔딱팔딱

폐광의 부활, 졸버레인 외부. ⓒ강미승

폐광의 부활, 졸버레인 외부. ⓒ강미승

아무 지식 없이 보면 잘 모른다. 눈앞의 졸버레인이 가동을 멈춘 폐광의 부활이란 것. ‘업사이클링’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활기를 띠면서 폐자재를 일부러 모아 지은 건축물에 익숙해진 영향일지도 모른다. 지난 1986년 완전히 숨이 멎은 탄광지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대신 미래 지향적인 문화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랜드마크인 샤프트12(ShaftXII)와 지척에 널린 85개의 건물은 갤러리로, 박물관으로, 카페로 사람들이 붐비는 일명 ‘핫플레이스’가 됐다. 특히 루르 박물관(Rhur museum) 속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석탄의 역사는 졸버레인의 존재감에 방점을 찍는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공간에서 맛보는 경험을 한다. 예술적 영감이 화수분처럼 샘솟는 곳이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후 낡은 것은 때려 부숴야 한다는 개발 방식에 일침을 놓는다.

박물관으로 진행하는 에스컬레이터.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건만,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하다. ⓒ강미승

박물관으로 진행하는 에스컬레이터.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건만,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하다. ⓒ강미승


루르 박물관 내 서점에선 과거 탄광지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고 현대 아트 작품을 엽서로 만날 수 있다. ⓒ강미승

루르 박물관 내 서점에선 과거 탄광지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고 현대 아트 작품을 엽서로 만날 수 있다. ⓒ강미승


과거의 샤프트12는 현재 루르 박물관으로 운영 중. 코에 석탄재를 잔뜩 묻힌 채 감상하는 듯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강미승

과거의 샤프트12는 현재 루르 박물관으로 운영 중. 코에 석탄재를 잔뜩 묻힌 채 감상하는 듯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강미승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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