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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직고용인가요" 실직 인천공항 소방대원의 쓸쓸한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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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직고용인가요" 실직 인천공항 소방대원의 쓸쓸한 추석

입력
2020.10.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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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비정규 직원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시험이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실직한 인천공항 소방대원이 지난 24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비정규 직원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시험이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실직한 인천공항 소방대원이 지난 24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20년간 일한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인천국제공항 개항(2001년 3월) 1년 전부터 공항소방대에서 근무한 이모(50)씨는 지난달 16일 인천공항공사 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 측으로부터 근로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공항공사와 용역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공항공사 자회사 소속 계약직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던 이씨는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공항공사는 2017년 5월 12일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하면서 약 1만명의 비정규직 중 30%는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는 자회사로 전환 배치하기로 했다. 직고용 대상은 안전과 밀접한 일을 하는 직군이었다. 화재 진압과 예방, 구조구급, 시설 점검 등의 일을 하는 공항소방대(정원 기준 211명)와 '버드 스트라이크(항공기와 조류의 충돌사고)' 등을 막는 야생동물 통제(24명), 보안검색(1,902명) 등이다. 이중 공항소방대와 야생동물 통제는 이른바 '인국공 사태'를 불러온 보안검색 직군보다 먼저 직고용 절차가 시작됐다.

공항공사는 2017년 5월 12일을 기준으로 이전 입사자는 적격심사를 통과하면 직고용하고 이후 입사자는 공개경쟁채용을 거쳐 직고용하기로 앞서 결정했다. 공개경쟁채용은 서류전형과 인성검사, 면접, 체력시험 등 적격심사 시험과목 외에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직무지식 평가 등 필기시험도 봐야 한다. 이씨는 입사일 기준으로는 적격심사 대상이었으나 관리자(상황실장)라는 이유로 공개경쟁채용에 내몰렸다.

그는 "NCS는 처음 접해보는 시험 방식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통과했다"면서 "그러나 체력시험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항소방대 체력시험은 소방공무원 신규 채용 수준에 이를 만큼 엄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최근 10년간 현장 출동 업무가 아닌 상황실에서 밤낮 없이 지휘감독 업무를 한데다 허리 디스크를 앓아 체력시험 통과를 자신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막상 탈락하고 보니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주)가 한 공항소방대원에게 보낸 근로계약 종료 통보서. 독자 제공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인 인천공항시설관리(주)가 한 공항소방대원에게 보낸 근로계약 종료 통보서. 독자 제공


이씨와 같이 직고용 과정에서 탈락한 공항소방대원은 45명, 야생동물 통제요원은 2명이다. 공항소방대원 탈락자 중 공개경쟁채용 대상자는 27명, 적격심사 대상자는 18명이었다. 탈락자 중에는 10월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랑과 빚을 내 공항이 있는 영종도로 이사온 직원 등도 포함됐다.

한 탈락자는 본보와 통화에서 "새벽과 밤, 주말에도 불이 나거나 항공기 활주로 이탈 등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으로 뛰어가는 등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계약을 해지하고 집에 가라니 눈물이 난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공개경쟁채용을 통해 뽑은 신규 직원 5명이 적응을 못하는 등 이유로 한달만에 그만뒀다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직고용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공항소방대와 야생동물 통제 탈락자들은 청와대와 인천공항공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복직'을 위한 지루한 싸움에 돌입했다. 탈락자 중 일부는 대열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이들 탈락자는 모두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이다.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이 있다는 이씨는 "당장은 퇴직금과 마지막으로 받은 급여 등이 있어 괜찮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하루 빨리 복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대두된 '공정의 문제'와 관련해 "비정규직이 책임졌던 공항소방대원 등의 업무는 교대 근무와 오랜 대기시간, 많지 않은 월급 등으로 정규직 전환이 확정되고도 지원자가 별로 없는 등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아니었다"며 "청년들이 봤을 때 공개경쟁채용을 하는 게 공정일 수 있지만,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불공정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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