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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찾는 한국 타투이스트, 비운의 예술가 아닌 노동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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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찾는 한국 타투이스트, 비운의 예술가 아닌 노동자로"

입력
2020.10.02 10:00
수정
2020.10.02 11:41
0 0

타투 합법화 추진하는 '타투유니온'? 사람들
"'타투 불법' 조항 없지만 불법인 유일한 나라"
"엄연히 존재하는 시장과 노동자 인정해달라"

타투이스트 도준(왼쪽부터), 도이, 조각의 작품. 타투유니온 제공

타투이스트 도준(왼쪽부터), 도이, 조각의 작품. 타투유니온 제공

‘만지면 푸른 물감이 묻어 나지 않을까. 조금만 힘을 줘 문지르면 지워질 것 같아.’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무색하게도 그림은 견고하다. 언젠가 버려질 종이 위가 아닌, 평생을 가져갈 몸에 새겨진 예술이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서정적인 한국 타투(Tattooㆍ문신)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브래드 피트, 릴리 콜린스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먼저 'K-타투'를 알아보고 연락할 정도다. 국내에도 나풀대는 셔츠 사이로, 소매 밖으로 피부에 새긴 자신의 감각과 추억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 그러나 전 세계에서 타투 시술이 불법인 유일한 나라다. 타투이스트(Tattooistㆍ문신사)들은 이런 제약이 역설적으로 한국 타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비운의 예술가’의 운명에 머무르지 않을 참이다. 대신 지난 2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고객의 피부에 그의 인생을 새기는 이 작업이, 왜 직업이 아니고 노동이 아니란 말인가.


[영상 인터뷰 바로가기 → https://youtu.be/rrcQ3LPqAPM ]


30년 된 '타투=불법' 낙인, 직업의 자유 빼앗긴 이들

“대한민국 법에 ‘타투는 불법이다’라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1992년도에 내려진 ‘타투는 의료행위다’라는 대법원 판결로 의사가 아닌 자의 타투 시술은 불법이 됐죠.”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의 한 타투샵에서 만난 타투이스트 도이, 즉 김도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타투유니온 지회장이 현황을 설명했다. 14년차인 그도 30년전 판결 앞에서는 범법자가 되어버린다. 당시 법원의 결정은 일본 판례를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6일 일본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는 ‘문신은 의료행위가 아니다’라고 결정하며 이를 뒤집었다. 지구상에 타투가 불법인 나라는 정말 한국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미국ㆍ영국 등 해외에서는 타투가 합법인 것은 물론, 타투이스트도 정식 직업이다. 노조의 보건교육부장을 맡은 타투이스트 도준 씨는 “해외에서는 타투이스트들도 일정한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기관에서 위생감염 관리감독도 하고요” 라고 말했다. 손재주 좋은 한국 타투이스트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야 합법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투샵에서 한국분들을 많이 스카우트 하는데, 이때 예술인 비자를 받고 정식으로 고용돼 일하게 되죠.”

김도윤(오른쪽) 민주노총 타투유니온 지회장과 조합원들이 지난 7월 서울 종로5가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2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기자회견에서 타투노동자 일반직업화를 호소하며 반려동물 타투 사진 액자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윤(오른쪽) 민주노총 타투유니온 지회장과 조합원들이 지난 7월 서울 종로5가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2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기자회견에서 타투노동자 일반직업화를 호소하며 반려동물 타투 사진 액자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국내에서 일하는 타투이스트들은 항상 불안을 안고 산다. 누군가의 신고 하나만으로 그 동안 일군 작업에 불법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악용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타투를 받은 뒤 의도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며 수백만원의 보상을 요구하는 식이다. 여성 타투이스트들은 성폭력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타투이스트 조각 씨는 “여성 타투이스트들의 작업실에 밤늦게 찾아오거나 불필요한 성적 연락을 하는 것은 물론 성추행도 비일비재해요. 하지만 이를 경찰에 신고하기 어려운 처지를 아니까 일부러 그러는 거죠” 라고 말했다. 도이 지회장은 “실제로 이런 괴롭힘이나 경찰 조사받는 과정 등이 너무 힘들어서 어린 친구들이 안 좋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타투 소비자ㆍ작업자 안전하려면 합법화하고 관리해야

출범 8개월차 타투유니온에는 약 400명이 가입했다. 도이 지회장은 “출범 후 첫 4개월간은 노조에 이런 소비자와의 분쟁이나 폭력 사례 중재를 부탁하는 연락이 세어보지 못할 정도로 많아 다른 업무를 못할 정도였다”고 말한다. 그 만큼 많은 타투이스트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노조는 녹색병원과 함께 타투 위생보건가이드라인도 만들고 있다. 작업자는 물론 소비자의 안전까지 지키기 위해서다. 도준 씨는 “타투가 합법인 해외에서는 위생규정이 잘 갖춰져서 교육까지 받고도 안 지키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오히려 스스로 필요한 규정을 만들고 지키려는 것”이라며 “곧 서울시노동권익센터 지원을 받아 각 작업실에 배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투유니온은 지난 6월 전태일재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과 함께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타투 합법화 운동을 시작했다. 타투유니온 제공.

타투유니온은 지난 6월 전태일재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과 함께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타투 합법화 운동을 시작했다. 타투유니온 제공.

하지만 노조는 약 1,300만명(미용문신 포함)으로 추정되는 소비자, 그리고 2만여명의 타투이스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결국 합법화가 최선이라고 말한다. 도이 지회장은 “타투 합법화를 추진할 때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반대 성명을 내고 이를 가로막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타투는 위험하다’고 말해온 단체 중 어느 누구도 실질적인 도움이나 규칙을 정해준 적이 없습니다”라고 꼬집었다. 정부 역시 안전지침 마련에 조차 손을 놓은 상태다. 노조는 지난 6월 전태일재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과 설립한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1992년 판례에 대한 헌법 소원을 추진 중이다. 앞서 같은 내용으로 청구된 5차례의 헌법소원이 기각 또는 각하됐지만, 노조의 의지는 단단하다.

“타투가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제 작업실 간판을 크게 세우고 싶어요.” 조각 씨는 소박한 꿈을 밝혔다. 명함을 만들 때도 작업실 위치가 드러날까 조심스러운 지금과 달리, 직업인으로서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거란 기대다. 도준 지회장의 꿈은 좀 더 원대하다. “타투이스트가 됐더니 ‘웬만한 좋은 직장 취직한 것보다 좋더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좋겠어요. 그 첫 걸음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우리 타투이스트가 함께 모이는 겁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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