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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기 전 터미널 매점서 산 멀미약, 불법이라고요?

입력
2020.09.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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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ㆍ잡화점 등 미허가 장소서 멀미약 불법 판매
판매자ㆍ감독기관은 "팔면 안 되는지 몰랐다"
약사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데…" 알고도 묵인

지난달 28일 경북 울릉군 소재 한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 승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윤한슬 기자

지난달 28일 경북 울릉군 소재 한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 승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윤한슬 기자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려는 이들이 많을 텐데요. 도서지역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청정지역인 울릉도는 새롭게 떠오른 여행지이기도 하죠.

울릉도처럼 장시간 배를 타야 할 땐 멀미약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요. 파도가 거세 배의 흔들림이 심할 땐 멀미약을 먹어도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요. 그러니 약을 먹지 않으면 어떨지 상상하기도 힘들겠죠. 그만큼 멀미약은 배 타기 전 준비물 1순위입니다.

미처 멀미약을 준비해 오지 못했더라도 발을 동동 구를 일은 별로 없어요. 여객선 터미널 내 매점과 터미널 인근 노상 좌판과 잡화점, 여객선 내에서 멀미약을 팔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후기가 종종 눈에 띄거든요. 강원 강릉시, 경북 울진군과 울릉군 등이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달 28일 강릉시와 울릉군에 있는 여객선터미널에 가보니 일부 매점에서는 큼지막하게 '멀미약'이라는 문구를 써붙였고, 일부 여객선에서는 "멀미약을 먹지 않은 승객은 매점에서 구매하라"고 안내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리 약국에서 산 멀미약이 아닌 터미널 근처나 배 안에서 판 멀미약은 불법이라는 점, 아시나요?

멀미약, 약국 판매 원칙… 편의점도 안 돼

경북 울진군의 한 여객선 터미널 내 매점에서 멀미약을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경북 울진군의 한 여객선 터미널 내 매점에서 멀미약을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즉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감기약과 소화제 같은 약은 일반 의약품이라고 부르는 데요. 약사법에 따르면 일반 의약품이라고 하더라도 약국을 개설한 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게 돼 있어요.

어라,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약을 살 수 있지 않냐고요? 맞는 말이긴 해요.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한 의약품에 한해서는 약국이 아니더라도 편의점처럼 지정된 곳에서 팔 수 있어요. 다만, 24시간 연중무휴 점포를 운영해야 안전상비의약품을 팔 수 있어 사실상 판매할 수 있는 곳이 편의점 밖에는 없는 셈이죠. 여객선 혹은 터미널 내 매점이나 슈퍼 및 잡화점, 노상 판매 등은 당연히 해당 사항이 없겠죠.

경북 울릉군 소재 한 슈퍼에서 멀미약을 판매한다는 문구를 써붙였다. 윤한슬 기자

경북 울릉군 소재 한 슈퍼에서 멀미약을 판매한다는 문구를 써붙였다. 윤한슬 기자

설령 안전상비의약품을 팔 수 있는 점포라도 멀미약은 판매가 불가능합니다. 해열진통제(타이레놀), 소화제, 파스 등 13개 품목만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멀미약은 13개 품목에 해당되지 않아요. 그러니 매점이나 노상은 고사하고 약국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판매하는 건 대부분 불법인 셈이에요.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약국 등 허가받은 곳에서만 취급하는 게 맞다"며 "멀미약은 안전상비의약품에 해당하지 않아 예외적으로 의약품 판매가 허용된 장소라도 멀미약을 팔면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특수 장소에 한해 의약품을 취급,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긴 합니다. 여기에는 선박도 포함인데요.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선박에서는 선원용으로 일부 의약품을 가지고 있도록 허용한 것이고, 그나마 허용한 의약 품목에도 우리가 흔히 아는 마시는 멀미약은 없어요. 배에서도 멀미약을 팔면 안 되는 것이겠죠.

판매자ㆍ지자체는 "몰라요"…주변에선 "모른 척"

강원 강릉시 한 여객선 터미널 내 매점에서 멀미약을 판매 중이다. 강릉=윤한슬 기자

강원 강릉시 한 여객선 터미널 내 매점에서 멀미약을 판매 중이다. 강릉=윤한슬 기자

허가를 받지 않은 곳에서 멀미약을 팔다 적발이 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데요.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됐을까요? 무지와 묵인의 '합작품'인 셈이에요.

일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멀미약 판매자들은 팔면 안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파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판매자는 그렇다 쳐도, 관리ㆍ감독의 책임이 있는 관할 지자체에서만큼은 의약품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어야 하는데요. 지자체에서도 관련 법규와 규정을 잘 몰라 제대로 단속이 이뤄지지 않기도 합니다.

보건소장 격인 울릉군 김순철 보건의료원장은 "울릉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항구 근처에서도 멀미약을 종종 판다"며 "자세한 내용이나 법규가 어떻게 돼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약국 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면 안된다는 점을 알지만, 판매처를 속속들이 알지 못해 단속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강릉시 관계자는 "터미널 내 매점은 자영업자가 판매하는 거라고 봐야 하는데, 미처 인지하지 못했었다"고 했고요. 또 울진군 관계자는 "여객선 터미널 내에서 멀미약을 파는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강원 강릉시의 한 여객선 터미널 내 매점에서 판매자가 손님에게 멀미약을 건네고 있다. 강릉=윤한슬 기자

강원 강릉시의 한 여객선 터미널 내 매점에서 판매자가 손님에게 멀미약을 건네고 있다. 강릉=윤한슬 기자

물론, 모두가 팔면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주변에서 약국을 하는 약사들이라면 문제점을 잘 알고 있을텐데요. 판매자가 지역 이웃이라는 이유로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울릉군의 한 약사는 "지역이 좁은데다 서로 다 아는 사이이다 보니 실제로는 문제가 되지만, 약사들이 문제제기를 안 한다"며 "다른 도서지역에 가도 상황은 다 비슷하다. 그분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게 아니겠냐"고 언급했습니다. 판매상들이 약국에서 멀미약을 사다 되판다는데, 이마저도 묵인하는 현실이에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전성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요. 전문 지식이 없는 판매자에게 섣불리 샀다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건데요. 강원 춘천의 한 약사는 "멀미약은 통상적으로 위험하진 않지만 연령과 지병에 따라 주의가 필요하고,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의약품 불법 판매를 감시해야 하는 보건소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행인데도 몰랐다는 것은 직무유기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강릉·울릉=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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