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무력 충돌
러시아제국 편입 후 반목의 역사 반복
27ㆍ28일 교전 최소 40명 사망... 중재 절실
옛 소련에서 한솥밥을 먹다 소련 해체 후 숙적으로 돌변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다시 맞붙었다. 이번엔 계엄령까지 내려져 전쟁 발발 턱밑까지 온 일촉즉발 위기다. 각각 미사일 공격(아르메니아)과 민간인 포격(아제르바이잔)으로 상대편이 먼저 도발했다며 한치도 물러설 기색이 없다. 27일(현지시간) 시작해 이튿날까지 이어진 양측의 무력 충돌로 적어도 40명이 숨지고 300명 넘게 다쳤다. 나흘간 교전 끝에 100여명의 사상자를 남긴 2016년 이후 최악의 교전이다.
양국의 항전 의지를 불사르게 한 진원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러시아 남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캅카스에 위치한 지역으로 30년간 화약고였다. 국제사회는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인정하지만 아르메니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 종교와 민족 갈등에, 역사적 앙금까지 뒤엉켜 아무리 협상을 해도 해법은 도통 나오지 않는 무한 충돌만 반복하는 중이다.
러시아제국이 깨뜨린 평화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원래 기독교를 믿던 아르메니아인과 투르크계 무슬림이 다수인 아제르바이잔인이 수세기 동안 어울려 살던 공존의 터전이었다. 평화에 먹구름이 낀 건 19세기 이 지역이 러시아제국에 편입되면서다. 터키, 이란과 패권 다툼을 하던 러시아가 전략적 요충지인 캅카스를 장악하려 아르메니아인들을 카라바흐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인구 균형은 깨지게 된다. 이어 러시아혁명 후 들어선 소련 공산 정권은 아르메니아인이 많아진 지역을 아제르바이잔 내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구로 배정했고, 통치 편의대로 경계선이 그어진 탓에 갈등은 싹트기 시작했다.
소련이 무너지자 느슨하게나마 묶여 있던 두 세력 사이의 고리는 완전히 끊어졌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의회가 독립공화국(NKR)을 선포하고 아르메니아로 통합을 추진한 1991년 결국 전면전이 터졌다. 2만~3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피의 보복은 3년 뒤 멈췄지만 항구적인 평화협정은 도출되지 못했다. 그렇게 아르메니아가 사실상 통치하면서도 아제르바이잔 안에 있는, 아슬아슬한 대치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땅 내놔" vs "못 돌려줘"
러시아제국은 사라졌으나 전쟁 훨씬 전부터 앙금을 축적해 온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원수지간으로 남았다. 영국 BBC방송은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이 자국 영토라고 여기는 땅을 잃었다고 분개해도 아르메니아인들은 전혀 돌려줄 마음이 없다”고 뿌리 깊은 갈등을 전했다.
물론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있었다. 2009년 정상회담으로 한 때 협상이 상당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교착 상태에 빠졌고 군사적 충돌만 지속됐다. 유럽 안보협력기구(OSCE)의 민스크그룹과 같은 국제사회의 중재 시도도 별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남부 캅카스 카스피해에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송유관이 매장돼 있어 분쟁이 전쟁으로 비화하면 세계 경제에도 심각한 불안 요소가 된다.
이 때문인지 유엔과 유럽연합(EU), 미국, 심지어 러시아까지 나서 적대행위 중단과 즉시 휴전을 양측에 촉구하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만 뿌리가 같은 아제르바이잔에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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