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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했던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맘껏 '터치'... 코로나가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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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했던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맘껏 '터치'... 코로나가 살렸다

입력
2020.10.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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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소기업 개발 핸드레일 살균장치
작년까지 시장 무관심, 폐업 위기
코로나19 이후 국내외 주문 쏟아져?
볼펜 닮은 개인 방역 상품 준비 중

코스트코코리아 경기 의정부점에 설치된 핸드레일 살균장치. 클리어윈코리아 제공

코스트코코리아 경기 의정부점에 설치된 핸드레일 살균장치. 클리어윈코리아 제공


서울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 A(45)씨는 요즘 지하철이나 건물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찜찜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하는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의 손이 거쳐 갔을 에스컬레이터 손잡이(핸드레일)가 안전할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는 얼마 전 거래처 사람과 만날 약속이 있어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 건물을 방문했다가 에스컬레이터에 달려 있는 A4 용지 절반 크기의 핸드레일 살균장치를 발견했다. A씨는 감염 가능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제품이 나온 게 반가웠다.

요즘 주변 에스컬레이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핸드레일 살균장치를 만든 건 국내 중소기업 '클리어윈코리아'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기업이지만 요즘 세계 시장에선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클리어윈코리아가 개발한 제품은 핸드레일이 작동할 때 발생하는 회전력으로 자가 발전해 살균장치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한다. 살균장치에는 발광다이오드(LED) 램프가 달려 있어 핸드레일에 자외선(UV-C)을 쬐어 감염체를 제거한다. 램프는 약 1만시간 사용이 가능해 대략 2년에 한 번 정도 갈아주면 된다.

지난 6월 전북대 인수공통연구소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세포를 이 자외선 살균장치에 한 번 통과시켰더니 바이러스가 90%, 세 번 통과시켰더니 99.99% 사멸됐다. 에스컬레이터가 회전할수록 살균장치를 더 많이 통과하게 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존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김경연 클리어윈코리아 부사장 겸 연구소장은 "에스컬레이터 핸드레일 살균장치를 만든 건 우리 회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클리어윈코리아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등에 이 기술에 대한 총 19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클리어윈코리아가 이 제품을 개발해 상품화한 건 2015년 7월이다. 당시엔 설치에 관한 관련 법규가 없는 게 걸림돌이었다. 관련 기관 등을 수소문한 끝에 2017년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적합성 검토 평가를 통과했고, 미국(FCC)과 유럽(CE)인증도 획득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시장에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제품 개발 비용 20억원, 인건비와 공장 유지비 30억원을 합쳐 약 50억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쌓였다. 반 년 이상 직원들에게 월급을 못 줬고, 지난 해엔 11명의 직원 중 결국 1명만 남고 모두 퇴사했다. 김 부사장은 "이대로 사업을 접어야 하나 매일 고민하다 기술이 너무 아까워 '1년만 더 버텨보고 폐업하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리츠 스타디움에 설치된 핸드레일 살균장치. 클리어윈코리아 제공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리츠 스타디움에 설치된 핸드레일 살균장치. 클리어윈코리아 제공


뜻밖에도 코로나19가 회사를 살렸다.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유행하면서 국내외에서 핸드레일 살균장치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생산 공장을 증설했는데도 지금 주문하면 2, 3주 뒤에야 인도될 정도로 공급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직원들은 연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1명 남았던 직원은 다시 20명으로 늘었다.

클리어윈코리아는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코리아와 계약해 국내 전 매장에 핸드레일 살균장치를 공급했고, CGV 극장에도 현재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주요 지하철 역은 물론 대형 병원, 백화점, 서울 시내 주요 기업들의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해외에선 영국 히드로 공항과 프리미어리그 축구단 아스널의 홈구장 에미리츠 스타디움을 비롯해 미국 휴스턴 공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말레이시아, 태국, 대만, 필리핀 등의 공항, 지하철, 병원, 쇼핑센터에도 설치됐다. 현재 51개국에 수출 중이다.

핸드레일 살균장치가 올해만 총 8,000대 가량 팔리면서 작년 8,000만원에 불과했던 클리어윈코리아의 연매출은 지난 9월 8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 100억원은 거뜬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클리어윈코리아가 이달 출시 예정인 볼펜 크기의 개인 방역 상품 '클리어 스캔'. 클리어윈코리아 제공

클리어윈코리아가 이달 출시 예정인 볼펜 크기의 개인 방역 상품 '클리어 스캔'. 클리어윈코리아 제공


클리어윈코리아는 이달 '클리어 스캔'이라는 개인 방역 상품도 출시할 계획이다. 손쉽게 휴대할 수 있는 볼펜 크기 제품으로, "약 3초면 엘리베이터 버튼 등 손이 닿는 곳 어디나 먼저 살균시킬 수 있다"고 김 부사장은 설명했다. 이달 28일부터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릴 안전박람회에 상품이 전시된다.

정식 출시를 하지도 않았는데 시장 반응은 벌써 뜨겁다. 해외에서 3만개를 선주문 받았고, 국내 증권사, 대형 건설사 등에서도 제품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김 부사장은 "핸드레일 살균장치를 통해 안전 이미지가 각인된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독자적인 기술과 경쟁력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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