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베이징 문화여행 ①자금성과 라오서차관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문화재가 풍부하다. 문화공연도 다양하다. 문화재와 공연을 묶어 여행해도 좋은 도시다. 베이징 문화 여행을 시작한다. 고궁(자금성)과 라오서차관(변검), 이화원과 황가피잉희원(그림자극), 류리창과 후광회관(경극), 스차하이와 홍극장(쿵푸), 백운관과 차오양극장(서커스), 국자감과 환러구(금면왕조) 순서다. 모두 6편이다.
직선 거리만 1km, 하루로 부족한 자금성 둘러보기
올해는 고궁 600주년이다. 1402년 조카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킨 주체가 명나라 3번째 황제에 즉위했다. 연호에 맞춰 영락제라 부른다. 1406년부터 14년에 걸친 대규모 공사를 벌인다. 난징 고궁을 모범으로 삼고 ‘주례’의 고공기(考工?)에 따라 궁궐과 종묘사직을 건설했다. 1420년 완공 후 이듬해 정월 천도했다. 그해 초여름, 갑자기 대전이 벼락을 맞았다. 화재가 발생해 무용지물이 됐다. 이부의 관리가 하늘의 뜻이라며 불평하다가 옥사했다. 3년 후 영락제가 사망하자 홍희제는 난징 환도를 추진했다. 즉위 1년도 되지 않아 사망하자 없던 일이 됐다.
천안문광장을 가로질러 고궁으로 들어간다. 명나라 시대 승천문(承天?)으로 불리다가 청나라 시대인 1651년 천안문으로 고쳐 불렀다. 새 왕조는 명칭을 대부분 바꾼다. 천안문은 황성의 정문이다. 고궁을 에워싸고 있는 황성과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자금성(紫禁城)이라 불렀다. 후한서 기록에 따르면 ‘천제는 자미궁(紫微?)에 거주’한다. ‘금단의 땅’이라는 인식이 만들어낸 이름이다.
정문인 오문(午?)부터 관람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입장권을 사는데 한참 줄을 섰다. 하루 입장객을 통제하기 위해 사전 예약을 받는다. 여권만 보여주면 일사천리로 통과다. 옹성처럼 '오목 요(凹)' 자 형태이며 삼면의 성벽이 약 38m다. 3개의 문이 열려 있다. 가운데 문은 황제 전용이다. 예외가 있다. 황후가 혼례를 치를 때 들어간다. 일반인도 과거에 급제하면 황제처럼 나올 수 있다. 안에서 보면 문이 5개다. 2개의 액문(掖?)이 있다. 명삼암오(明三暗五)라 한다.
자금성은 1925년부터 고궁박물원(故?博物院)이다. 2시간, 반나절, 온종일로 나눠 관람 동선을 추천한다. 일직선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코스에 익숙한데, 최소한 4시간을 투자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꼼꼼하게 훑으려면 하루로 부족하다. 오문에서 오른쪽, 즉 동쪽으로 가면 문화전(文?殿)이 있다. 태자가 업무를 보는 장소다. 오행에 따르면 동쪽은 목(木)에 속하고 녹색이며 성장을 뜻한다. 문화전을 찾는 이유는 뒤쪽에 있는 문연각(文??)을 보기 위해서다.
자금성의 건물은 모두 황색과 홍색으로 물들어 있다. 연두색의 문연각을 보면 조금 낯설다. 닝보에 있는 사설 도서관인 천일각(天一?)을 모방했다. 2층 건물로 보이나 해자와 지하실이 있어 한 층이 숨겨진 3층 구조다. 청나라 건륭제는 사고전서를 편찬한 후 전국 7곳에 도서관을 세웠다. 장강 북쪽 4곳, 남쪽 3곳에 비치했다. 베이징 자금성과 북해공원, 청더 피서산장, 선양 고궁과 전장 금산사, 양저우 대관당, 항저우 성인사다. 총 3만6,000여권에 이르는 사고전서를 보관하기 위해 7번 필사한 셈이다. 제자리에 남은 사고전서는 단 하나도 없다. 파손과 이동, 해외 유출도 있다. 문연각 필사본은 장제스가 타이완으로 가져갔다.
자금성은 외조(外朝)와 내정(?廷)으로 나뉜다. 외조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으로 업무 공간이다. 2,377m²인 태화전 광장에서는 즉위, 대혼, 출정이나 문무백관이 참여하는 만찬을 거행했다. 만찬은 1년에 3번 열린다. 원단과 동지, 황제의 만수절(생일)에 치른다. 1945년 10월 10일엔 일본군이 항복 의식을 치른 장소였다. 무려 20만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태화전 지붕은 중첨무전정(重??殿?) 구조다. 용마루가 다섯이고 네 방향으로 비탈처럼 뻗었고 이중 처마다. 너비는 11칸, 깊이는 5칸으로 자금성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각이다. 3층 높이의 월대(月台)에 세웠다. 배수구 역할을 하는 석조 용두(??)가 1,142개나 있다. 비가 내리면 물이 뿜어져 나오는 장관을 천룡토수(千?吐水)라고 한다. 비 오는 날 가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황권을 상징하는 해시계 일구(日晷)와 무게를 측정하는 가량(嘉量)이 양 끝에 위치한다. 동으로 제작한 거북과 학은 장수를 기원한다. 화재를 대비해 물과 목탄을 채우는 동항(?缸)도 있다. 18개의 동정(?鼎)은 불을 밝힌다.
태화전을 비롯해 전각마다 용마루에 망새를 설치한다. 신화 속 동물이 등장한다. 몇 마리가 있느냐에 따라 위상이 정해진다. 태화전에 유일하게 10마리가 등장한다. 중화전과 보화전은 9마리다. 맹수를 타고 있는 선인이 선두에 서고 용, 봉황, 사자, 천마, 해마, 산예, 압어, 해치, 두우가 순서대로 정렬했다. 10번째 동물은 행십(行什)이다. 날개 달린 원숭이처럼 생겼다. 손에는 절굿공이를 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우레를 막아준다고 알려졌다. 화재를 예방한다고 믿었을까? 지금은 피뢰침이 있다.
뒤로 돌아가면 중화전과 보화전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중화전은 외조 중 아담한 편이다. 지붕은 단층의 사각찬첨정(四角?尖?)이다. 봉긋한 보정(??)을 꼭지점으로 사면이 비탈로 날씬하게 뻗었다. 외조 중 단정하고 안정감을 주는 전각이다. 보화전은 이중 처마로 태화전과 비슷하다.
외조를 지나 내정으로 직진하지 않고 멈춘다. 동쪽과 서쪽에 흥미로운 볼거리가 있다. 동쪽으로 가면 석경문(???)이다. 추가로 입장료 10위안을 내고 들어가면 구룡벽과 만난다. 용 아홉 마리를 새긴 가림벽이다. 너비가 29.47m, 높이가 3.59m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용이 변화무쌍한 동작을 하고 있다. 북위의 수도이던 다퉁에도 구룡벽이 있다. 너비 45.5m, 높이 8m로 영락제의 13번째 아우인 주계가 감히 제작했다. 천자의 구룡벽보다 크니 대역죄에 해당한다. 용의 발가락을 4개만 만들고 황제의 꿈을 버렸다. 용 발가락은 5개다.
구룡벽 북쪽 끝에 우물이 있다. 진비정(珍妃井)이다. 1900년 서양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했다. 서둘러 서태후와 광서제가 피난을 떠났다. 서태후는 광서제가 총애하는 진비가 눈엣가시였다. 태감을 시켜 우물에 산채로 던졌다. 좁은 우물 속으로 사람이 들어가다니 신기하다.
내정 입구 서쪽에 융종문(隆宗?)이 있다. 편액 왼쪽에 화살촉 하나가 박혀 있다. 일부러 찾아야 보인다. 1813년 청나라 가경제 시대에 자금성 습격 사건이 발생했다. 천리교 민란의 주모자 임청이 기획했다. 동화문과 서화문으로 진입해 침궁인 양심전에 있는 황제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대담하고 무모했다. 아침부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오후 늦게야 일망타진 됐다. 외부에 숨어 있던 임청도 체포 후 능지처참을 당했다. 황제는 반성문인 우변죄기소(遇?罪己?)를 정사에 남겼다. ‘한ㆍ당ㆍ송ㆍ명 시대에도 없던 일’이라며 후대 황제는 민생을 챙기라 당부했다. 화살촉을 그대로 남겨 타산지석으로 삼으라 했다.
내정은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이다. 건청궁은 명나라 시대 14명의 황제와 청나라 순치제와 강희제가 침궁으로 사용했다. 옹정제가 침궁을 양심전으로 옮긴 후에는 접견 장소로 사용했다. 석대와 일직선을 이루고 너비는 9칸, 깊이는 5칸이다.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은 사극 드라마에 자주 보인다. 황제가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황제 계승 방법인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으로 유명해진 편액이기도 하다. 후계자에 대한 기록을 밀봉해 편액 뒤에 보관했다. 황제 사망 후 개봉했다.
청나라 황후가 곤녕궁을 침궁으로 사용한 시절이 있다. 유리로 가려진 침대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 용과 봉황을 아로새긴 침대다. 황제와 황후가 합궁하는 현장이다. 황후가 가마를 타고 자금성으로 들어와 건청궁에 도착한다. 사과를 건네받고 금은보화를 넣은 보병을 품고 들어간다. 이때 화로를 넘어가는데 나쁜 기운을 없애는 행위다. 다시 가마를 타고 교태전을 지나 곤녕궁으로 간다. 문지방 말 안장에 사과 두 개를 놓고 깔고 앉는다. 사과의 중국어는 ‘핑궈(?果)’, 핑안(平安)을 뜻했다. 두 개인 이유는 핑핑안안(平平安安), 핑안이 일반명사라면 핑핑안안은 ‘두루 평안하기 바라는 기원’이다. 지금도 사용하는 말이다.
내정의 동쪽과 서쪽에 6개씩 있는 전각에는 황제의 부인인 황후와 귀비, 궁녀가 산다. 국내에 소개된 드라마 ‘연희공략(延禧攻略)’은 주인공 웨이잉뤄가 친언니의 복수를 위해 궁녀로 들어간 후 연희궁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동육궁 중 하나다. 자금성이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저장성 헝덴의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인터넷으로만 방영됐으며 첫해인 2018년에만 누적 조회수 60억회를 기록했다. 다른 드라마보다 5배나 많았다. 드라마가 대박이 난 이후 찾았더니 온통 주인공 사진으로 도배돼 있었다. 건륭제와의 러브라인이 있고 음모와 지략이 펼쳐지는 70부작 드라마다.
거대한 궁성이 한눈에…자금성 전망대 경산공원
후원인 어화원(御花?)을 거쳐 북문인 신무문(神武?)을 나선다. 고대 신화에서 북방을 지키는 신의 이름을 빌려 현무문(玄武?)이라 불러야 했는데, 청나라 강희제의 이름이현엽(玄?)이어서 감히 쓸 수 없었다. 문을 나서면 정면에 경산공원(景山公?)이 나타난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이자성 민란군이 숨통을 조이자 경산공원에 올라 자살한다. 명나라의 종말이었다.
경산공원 입장료는 2위안, 약 350원으로 공짜나 다름없다. 30분가량 언덕을 올라가 정상에 서면 자금성이 펼쳐진다. 날씨가 좋건 말건 언제나 멋지다. 눈이 살짝 내린 날의 자금성을 잊을 수 없다. 천안문에서 신무문까지 걸어온 동선을 거꾸로 돌려보는 재미도 있다. 왼쪽이 동육궁이고 오른쪽이 서육궁이니 반대 방향이 됐다. 자금성은 가로 753m, 세로 961m다. 쾌청한 날이면 전체가 훤히 보인다는 뜻이다. 대충 오문까지 시선이 날아간다.
라오서차관...찻집이야, 공연장이야?
자금성 옆길 따라 남쪽으로 3km를 걷는다. 천안문광장을 지나고 대로를 건너면 라오서차관(老舍茶?)과 만난다. 차관은 차를 마시며 공연을 관람하는 시설이다. 중국의 현대 문학가 라오서의 이름을 따서 1988년 차관을 열었다. 1994년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다녀간 이후 날로 번창했다.
장취호차예(?嘴?茶?)는 찻잔에 차를 따르는 서비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주전자 길이가 사람 키와 비슷하다. 빙빙 돌리고 던지고 받고 온갖 기예를 부린다. 차 한잔 마시고도 남을 시간이다. 청나라 말기에 유행한 문화를 복원했다. 고급 식당에서도 손님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시연하기도 한다. 쉽게 배우긴 어려워도 신기해 보이지는 않는다.
쿵푸(功夫) 공연도 있다. 발차기와 공중곡예도 하고, 돌이나 쇠를 깨고 창을 구부리기도 한다. 중국 사람들 참 좋아한다. 아리따운 무용수가 나와 당나라 궁녀처럼 춤을 추는데 손뼉을 치고 난리다. 자리마다 가격이 다르다. 맨 앞자리에 앉으려면 거의 15만원이다. 뒤로 3칸 물러날 때마다 가격이 내려간다. 10만원, 7만원, 5만원, 3만만원짜리 일반석까지 불평등하다. 당연히 앞 좌석일수록 차와 함께 나오는 다과도 업그레이드된다. 무용수의 미모에 관심 없으면 일반석도 볼만하다.
꽃과 촛불이 연결된 촛대를 입에 물고 노래를 한다. 박자를 맞추기 위해 북도 친다. 무형문화재 함등대구(含?大鼓)다. 듣기만 하면 공연의 난이도와 내공을 짐작하기 힘들다. 알아듣기 힘들지만 공감이 된다. 상성(相?)은 정말 고역이다. 만담이다. 베이징 사투리와 독특한 발음인 얼화가 난무한다. 무슨 말인지 따라 듣느라 진땀인데 중국 사람은 배꼽 빠질 듯 박장대소다.
서커스와 마술은 심심풀이다. 손으로 연출하는 그림자극 수영구기(手影口技)는 말이 필요 없다. 함께 소리 내 웃는다. 음악 반주에 맞춰 동물이나 사람 형상이 시시각각 변하는데 재치 만점이다. 머리로 항아리를 돌리는 기예는 서커스이기도 하다. 라오서차관에서 가장 많이 본 공연이다. 개그맨 뺨치는 코믹 요소가 있다. 인상도 푸짐해 엄청 무거운 항아리가 360도 돌아가면 가끔 짠하다.
마지막 무대는 변검이다. 경극도 짧게 보여주는데 맛보기 수준이다. 경극이 안후이에서 왔듯이 변검의 고향은 쓰촨이다. 8분가량 음악에 맞춰 율동을 부리다가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다. 정확히 말하면 가면을 바꾸는 기술이다. 본고장인 쓰촨의 전문극장에 가면 변검 전수자가 단체로 나와 화려한 레퍼토리를 보여준다. 다른 지방에서는 혼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신기하고 흥미진진하다. 언제 변하고 어떻게 탈바꿈하는지 기대의 연속이다.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사회자가 나온다. 조용히 나와 친절하게 공연을 소개한다. 라오서차관의 품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공연장에 들어갈 때나 나갈 때도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우렁찬 목소리로 환영 인사, 은은한 미소로 또 만나자는 약속 인사를 건넨다. 모두 울림을 주는 소리다. 한결같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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