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무지해 바이러스 퍼트린다 인상 줘
전문가 "특정집단 대한 편견 심어줄 수 있어"
"방역 책임 회피하는 것에 불과" 지적도
최근 방문판매소를 중심으로 고령층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집중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정부가 노인들의 외출 자제를 집중 호소하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메시지가 신중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자칫 노인들을 겨냥하는 메시지 전달이 신천지 신도나 성소수자를 향해 번졌던 특정집단에 대한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인들이 마치 무지해서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다는 인식을 대중에 심어주게 되면, 오히려 방역의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은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안본) 회의 모두발언에서 "방문판매를 통한 신종 코로나 집단감염은 8월 중순 이후에만 총 10건이고, 확진자 중 중장년, 고령층 비중이 높아 우려스럽다"며 "어르신들께서 '무료체험'이나 '사은품'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8월12일~9월11일) 60세 이상 확진자들의 감염경로별 비중을 살펴보면 종교시설 관련이 27.5%로 가장 높았고, 확진자 접촉 22.1%, 조사 중 22.1%, 집회 관련 9.7% 등이 뒤를 이었다. 방문판매 및 각종 설명회도 5.2%로 130명에 달한다. 60대 이상부터는 치명률이 급격히 치솟기 때문에 최근 위중증환자는 물론 사망자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정부가 고령 확진자 증가세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방문판매 업소 등이 밀집ㆍ밀폐ㆍ밀접한 시설이라 방문을 자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무조건 가지 말라고만 하기 보다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8월 23일부터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적용되면서 경로당과 사회복지시설 등이 30일째 문을 닫아 노인들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방문판매소 등으로 발걸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부가 이런 배경은 모두 무시하고 그저 노인들만 탓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기준 전국 노인복지관 394개 중 97.5%(384개)가 휴관했고, 경로당은 6만7,192개 중 76.5%(5만1,404곳)가 운영을 중단했다.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경로당과 복지시설을 다 닫아 갈 곳이 없는 노인들에게 왜 거기(방판업소)에 갔냐고 비판만 하면 되겠느냐"며 "차라리 격일제로 순번을 정해 복지시설에 갈 수 있게 하는 등 최소한의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도 "노인들이 단순히 경품 때문에 가는 게 아니고, 모일 곳이 마땅찮고 외로운데 돈도 없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신종 코로나가 장기화될 텐데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로 인한 노인돌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안부전화 걸기, 식품 배달, 각종 비대면 영상 서비스 등을 제공하지만 그 대상이 한정적이거나 실효성이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도 횡성군에 사는 이순자(69) 할머니는 "집에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으로는 전화만 거는데 무슨 영상을 보느냐"며 "시골 사는 노인들에겐 의미 없는 것들"이라고 토로했다.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도 "연초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라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쳐도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며 "현장을 좀 더 둘러보고 실질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특정 집단의 행위만을 지속적으로 지적할 경우, 잘못된 편견을 만들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김우주 고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의 확산세가 특정 집단의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는 건 정부가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방역을 위해 온 국민이 힘써야 한다고 하면서 편 가르기를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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