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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심 삶의 질 개선하라

입력
2020.09.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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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우루과이 파나마시티에서 한 여성이 코로나19를 피해 발코니에 나와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국내 상당수 빌라는 외부 발코니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다. 파나마시티=AFP 연합뉴스

우루과이 파나마시티에서 한 여성이 코로나19를 피해 발코니에 나와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국내 상당수 빌라는 외부 발코니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다. 파나마시티=AFP 연합뉴스

구도심 주택가 4층 건물에 살고 있다 보니, 다른 집 옥상을 자주 마주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옥상은 버려져 있었다. 흡연자나 빨래를 널러 올라오는 주민뿐이었다.

그러나 요즘 옥상에선 다양한 활동이 벌어진다. 이른 아침부터 식물에 물을 주는 아주머니, 운동장처럼 거니는 할머니, 캠핑을 즐기려 텐트 치는 아버지와 아들 등 남녀노소가 모두 등장한다. 따가운 햇볕을 가리기 위한 접이식 천막, 운동기구, 놀이기구의 일종인 트램펄린ㆍ미끄럼틀ㆍ튜브형 수영장 등도 설치된다. 주변에 공원이 없어서기도 하지만 코로나19로 외출이 사실상 막히며 벌어진 현상이다.

지금의 옥상은 코로나19를 피할 휴식처론 부족하다. 오래된 빌라 옥상은 난간조차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추락 위험마저 있다. 신축 빌라도 옥상 바닥에 별다른 보강 없이 녹색방수 페인트만 발라놓아, 많은 주민이 몰리면 아랫집 피해가 우려된다.

이처럼 빌라에서 유일한 쉴 곳이 옥상이 된 이유는, 주택법에서 30세대 미만 공동주택에 부대ㆍ복리시설을 설치할 의무를 두지 않고 있어서다. 이 점을 노린 건축업자들은 29세대로 쪼개 신축하는 꼼수를 부린다. 코로나19 시대엔 마당처럼 활용될 수 있는 외부 발코니조차 분양 평수에는 포함이 안 되다 보니 업자들이 배제하는 일이 많다. 주민 삶의 질과 관련된 부분인데도 정부나 지자체에선 개선 의지조차 없다.

이런 구도심 주민 삶의 질은 매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놀이터, 공원 등 편의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거 공원 역할을 했던 학교 운동장마저 닫혔다. 집 앞 도로는 주차된 차량과 배달 오토바이가 장악하고 있어 아이들을 내놓기 무섭다.

집 앞에 내놓는 쓰레기봉투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거리 곳곳에 나뒹군다. 아파트처럼 공동 쓰레기장이 없어 벌어진 현상이긴 하지만 1990년대 만들어진 쓰레기종량제의 부작용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하늘도 빼앗겼다. 전기선과 인터넷선이 아파트처럼 지중화돼 있지 않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가을 푸른 하늘조차 마음에 담기 어렵다.

구도심 삶의 질 저하는 결국 정부가 가구수 늘리기에만 주력한 폐해다. 기존 주거공간은 재개발ㆍ재건축 대상으로만 보고 방치한 채 사실상 아파트 물량 늘리기에만 힘을 쏟아 왔다. 집값 상승을 막겠다며 최근 내놓은 정책도 3기 신도시 조성뿐이었다. 아파트 공급수만 늘리는 토건시대 개발 방식에서 못 벗어난 행태다.

구도심 빌라촌에 대한 기본적인 환경 개선만 이뤄져도 아파트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구도심은 기본적인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는 만큼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도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투자 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는 일부 지역에만 예산을 집중해 뿌리고 있다. 주민이 실제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치적 쌓기를 위한 정책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투기를 떠나 거주환경을 우선시 하는 국민은 삶의 질만 확보된다면 굳이 비싼 고층 아파트를 고집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질 전망인 만큼, 지자체ㆍ정부는 보다 세심한 주택 정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박관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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