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 '갓급식' 만든 영양사 "노량진 수산시장도 누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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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터 '갓급식' 만든 영양사 "노량진 수산시장도 누볐죠"

입력
2020.09.21 10:00
수정
2020.09.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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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메뉴로 화제된 김민지 전 세경고 영양사 인터뷰
수제 메뉴로 단가 절약…저렴한 재료 찾아 나서기도
"학생들에게 즐거운 추억 선물해주고 싶어 고민"

경기 파주시 세경고와 파주중 급식에서 나온 랍스터와 게 메뉴. 김민지 영양사 제공

"급식 때문에 전학가고 싶은 학교 1위, 급식 때문에 매점 매출이 떨어졌다는 풍문이 도는 학교, 급식 맛집 1위, 집밥보다 급식이 나은 학교."

급식계 부동의 1위.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神)계라는 뜻에서 '갓급식' 이라는 말이 붙은 그 곳. 경기 파주시 세경고와 파주중은 '급식계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두 학교는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로 '급식'이 함께 자동으로 뜰 정도다. 하나의 급식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두 학교는 전복과 문어 등 해산물은 기본이고, 여느 급식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바닷가재(랍스터)까지 등장해 전국 학생과 교직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두 학교의 '갓 급식'을 만든 장본인은 전 영양사 김민지(30)씨. 김씨가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퇴사 소식을 알리자 이마저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SNS에는 세경고와 파주중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기사에서 선생님 식단을 보고 정말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다"(wh****), "아이들도 선생님 덕분에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을 거다"(se****), "세경고 학생도 아닌데 내가 다 마음이 아프다"(ck****) 등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약 7년 동안 정들었던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앞둔 김씨와 20일 이야기를 나눠봤다.

랍스터에 홍게까지… "이 학교 급실 실화냐" 반응 폭발

김민지 영양사는 2013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세경고와 파주중의 급식을 담당해왔다. 김민지 영양사 제공

김씨는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2013년부터 지난달까지 약 7년 동안 세경고와 파주중의 급식을 책임졌다. 물론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식단을 제공한 건 아니었다.

교육부 방침에 따라 자체적으로 급식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현재는 90점대이지만, 한때 저조한 점수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그는 "두 학교가 첫 직장이어서 부족했던 부분도 많고 처음부터 특식이 있었던 건 아니다"라며 "학생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 고민하다 학생들과 꾸준히 소통하다보니 하나둘씩 새로운 메뉴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6년 12월 김씨가 학생건강증진분야 유공자로 선정돼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았을 때 까지만 해도 랍스터 메뉴는 없었다. 당시에도 탄두리 치킨과 폭립 치즈 퐁듀 등 기존 급식 메뉴에 없던 새로운 메뉴로 주목을 받긴 했으나, 학생들과 꾸준히 소통을 하면서 지금의 메뉴에 이르게 됐다.


학생들 기 살려주기 위해 펭수 탈을 쓰다


김민지 전 세경고 영양사가 디저트 메뉴에 맞는 탈을 쓰고 학생들을 반기고 있다. 김민지 영양사 제공

김씨는 "나는 학창시절 급식실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었는데 학생들만큼은 급식실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학생들이 급식실에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부터 다른데,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일부 학생들은 졸업하고도 급식실에 찾아오고, SNS 등을 통해 연락을 해온다고 한다.

학생들이 가장 크게 호응했던 메뉴는 단연코 랍스터와 홍게. 최근 진행한 급식 만족도 조사에서도 랍스터와 홍게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짬뽕을 '베스트 메뉴'로 꼽은 학생들이 많았다.

급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메뉴인데다 1시간도 안되는 짧은 점심 시간에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일부 손질을 해두는 배려가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랍스터를 언제 또 먹을 수 있는지 물어오는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이에 김씨는 퇴사 전 마지막으로 구성한 9월 식단에 랍스터 메뉴를 포함시켰다. 세경고 홈페이지에 따르면 21일 점심에 랍스터와 로제파스타가 나올 예정이다.

급식과 함께 나온 쪽지(위)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알리는 문구들. 김민지 영양사 제공

식재료 자체가 특별한 경우도 많지만, 식단에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경우도 많다. 지난달 14일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날갯짓을 하라는 의미를 담은 떡과 식용꽃이 들어간 비빔밥을 선보였다. 또 지난해 10월 25일에는 '독도의 날'을 기념해 독도 컵 케이크를 마련했다. 특별한 기념일이면 기념일에 맞는 식단을 준비하곤 하는데, 김씨는 교육적 의미를 담은 메뉴들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메뉴도 인기지만,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그만의 노력도 있었다. 밥 먹으러 오는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식단에 맞는 인형 탈을 쓰고 학생들을 반기기도 했고, 급식과 함께 응원 문구가 담긴 쪽지도 종종 선물했다. 지난해 수능을 앞두고 급식실에 수능을 보는 고3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 게시판에 부착하고 간식과 함께 손편지를 선물한 일은 그 동안 영양사 생활 중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찬 기억으로 남았다.

재료 찾으러 발품, 비용 줄이려 손품

김민지 영양사는 학생들에게 랍스터 급식을 제공하기 위해 수산시장을 방문하는 등 수개월동안 노력을 기울였다. 김민지 영양사 제공

두 학교의 한끼 급식비는 4,000원대. 5,000원이 채 안 되는 급식비지만, 고급 레스토랑 못지 않은 메뉴를 자랑한다. 똑같은 급식비인데도 남다른 메뉴. 실제로 온라인에서 급식 사진이 화제가 될 때마다 줄곧 "이게 가능하냐" "실화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 같은 급식이 가능했던 배경엔 김민지 영양사의 숨은 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 예로 랍스터 메뉴 하나만 해도 식판에 놓이기 까지 몇 달의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김씨는 이때를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급식에 적절한 랍스터의 크기는 물론 조리법, 맛 등 그 어느 것 하나 감이 오지 않았다. 이에 인터넷에서 랍스터 판매 업체를 찾아 일일이 전화해서 궁금한 것을 묻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시세를 파악하기도 했다. 그 덕에 랍스터 수입 방법과 시기 별 가격 변화 등에 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

재료를 선정했다고 해서 곧바로 학생들에게 제공된 건 아니었다. 저렴한 업체를 찾아가 사비로 랍스터를 사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식판에 오를 수 있었다. 김씨는 "조리사와 함께 랍스터를 오븐에 구워 보고, 홍게도 직접 사서 어떻게 쪄야 하는지 상의하고 2시간 내에 조리할 수 있는지 등을 고민했다"며 "여러 가지 테스트와 회의를 거쳐 식재료를 선정한 덕에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세경고와 파주중에서 제공된 급식 메뉴들. 김민지 영양사 제공

물론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랍스터 한 마리 가격은 한끼 급식비보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랍스터가 그나마 저렴했던 시기에도 6,000원이 넘었다. 한번 특식이 제공됐다고 해서 다음날 메뉴를 부실하게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씨는 평소에도 급식의 질이 꾸준하게 유지되도록 애썼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손품'이었다.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완제품을 사는 대신 제철 생과일을 갈아서 에이드를 만들거나 식빵에 과일을 올린 토스트, 직접 만든 등심 돈가스 등 수제 음식을 만드는 방식으로 단가를 절약했다. 그는 "손이 더 가더라도 직접 만들다보면 100~200원이라도 아낄 수 있는데, 이렇게 월 단위로 아끼다보면 특식을 줄 때 단가가 높은 식재료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만의 갓급식은 점차 이웃 학교로 퍼져나가고 있다. 김씨와 일부 학교 영양사들이 각자만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세경고처럼 급식에서 랍스터를 내놓은 다른 학교도 생겼다. 그는 "업체를 알아보는 데만 2, 3개월 넘게 걸렸는데 여러 학교에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며 "전국 각 학교에서 이런 급식을 제공해 많은 학생들이 양질의 급식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김씨는 이제 학교를 떠나 다양한 도전을 시도해 볼 예정이다. 그는 "많은 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가 오기도 했는데, 요리 책도 만들고 다이어트 식단 레시피도 공유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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