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본과 4학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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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본과 4학년들에게…

입력
2020.09.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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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의대정원 확대 등 4대 의료정책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봉합된 가운데, 앞서 의사국가시험에 90% 가까이 응시를 취소한 의대 본과 4학년들의 재응시 허용 여부가 남은 불씨가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실기고사장인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뉴스1.


가장 억울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여러분일 거라 생각합니다. 의정갈등이 봉합됐지만, 여러분의 거취는 불투명합니다. 선배들의 단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ㆍ여당과의 ‘4대 의료 정책’ 원점 재논의 합의를 “전례가 없는 성과”라고 자축하면서 파업(계획)을 접었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소속 선배들은 사직서까지 쓰면서 집단휴진을 펼쳤다가 결국 업무에 복귀했죠. 모두 제 자리로 갔습니다.

집단휴진 때 수술과 치료 시기를 놓친 누군가의 병세는 나빠졌고, 누군가는 식물인간이 됐으며, 어떤 분들은 응급실을 헤매다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선배들 중 누구도 환자나 유족에게 사과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제출된 사직서가 수리됐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환자를 위해 의료 정책에 반대한다’는 의사들이 ‘결국 집단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환자를 외면할 수 있다’는 현실에 많은 국민들은 공포와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런 공분이 ‘국시 재응시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을 통해 여러분에게 쏠린 점은 안타깝습니다.

물론 선배들도 뒷짐만 지진 않더군요. 여러분들의 ‘국시 거부 중단’ 선언을 의대 교수들은 “말의 행간을 읽으면 시험을 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해줬고, 의협도 정치적으로 풀 문제라며 정부ㆍ여당에 기회를 달라 요구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전공의 고발 당시 '교수직을 버리겠다'거나 '13만 회원이 가만 있지 않겠다'고 했던 때와 비교해보면 온도차가 느껴집니다.

대전협이 1일 기자회견에서 “망가져버린 부동산 정책,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 등 과정의 공정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에 맞서, 대한민국의 청년들로서 모든 청년들과 연대하겠다”고 한 말도 후배인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만 정부에 공정을 접으라는 요구는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모순 아닐까요. 여러분에 대한 ‘추후 구제 반대’ 청원에 국민 57만명이 동의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겁니다.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수 있지만 어쩌겠습니까. 성인인 여러분의 선택이었습니다.

1년 허송하겠단 생각이 들겠지만, 멀리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겐 일반인보다 훨씬 좋은 여건이 펼쳐져 있습니다. 한 지방 병원엔 연봉 3억원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었고, 다른 지방 병원에선 연봉 5억3,000만원을 지급해야 겨우 의사를 구할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이 정도는 전교 1등 출신인 여러분의 선배들을 만족시킬 수 없나 봅니다. 지방 의료인력 부족에 동감하면서도 자꾸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을 보면요. 여러분도 수도권 개원을 꿈꾸신다면 이번에 주어진 1년을 경영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 쏟아보라고 추천 드립니다. 제 주변 의사 친구들의 말을 빌리면, 개원의들이 망하는 이유는 시장조사 실패, 과도한 투자와 경쟁, 사기 등에 따른 것이지 수가가 낮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의사가 되면 선배들처럼 혈세낭비에 대한 걱정을 이어주길 부탁합니다. 의협은 공공의대에 7년간 예산 1,334억원, 한방 첩약 급여화에 매년 건강보험료 500억원이 낭비된다고 우려하더군요.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하나 제안합니다. 의사가 되면 비의료인에게 면허를 빌려주지(사무장병원) 마시길 바랍니다. 사무장병원을 '적발해 환수가 결정된' 건강보험료가 지난해만 9,222억원입니다. 해를 넓히면 수조원으로 불어납니다. 이 중 실제로 환수된 금액은 5% 안팎에 불과합니다. 이런 혈세낭비부터 막는다면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집니다. 국민들의 더 큰 신뢰를 얻는 의사, 상처를 보듬는 의사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대혁 기자


이대혁 정책사회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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