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불사건 사과했다고 대학서 파면
법원 승소에도 대학은 '요지부동'
손원영(55) 서울기독대 교수는 올해 2학기 강의를 단 하나도 배정받지 못했다. 강의는커녕 자신의 연구실도 문이 잠겨 출입할 수 없는 처지다. 요즘 그의 일상은 매일 아침 학교에 나와 대학을 상대로 1인 시위를 벌이는 것. 자신을 "복직시켜 달라"는 피켓을 들고서다. 법적으로 엄연한 정규직 교수 신분인데 복직을 요구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4년 전의 한 사건때문이다.
15일 서울 은평구 서울기독대에서 만난 손 교수는 "2016년 1월에 일어난 '개운사 훼불사건'이 인생을 180도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개신교 신자라고 밝힌 한 남성이 경북 김천에 있는 개운사 법당에 들어가 "불상은 미신이고 우상이다"라고 외치며 흉기로 불상과 불당을 파괴한 사건을 말한다. 다른 종교에 대한 개신교의 왜곡된 배타성이 표출된 일로, 종교계 충격이 상당했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도 개신교인들의 훼불사건은 종종 있어왔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손 교수는 "사건 자체보다도, 이 일에 대해 개신교를 대표하는 단체나 대형교회, 목회자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며 두번째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양심에 가책을 느꼈던 그는 결국 침묵을 깼다.
사건 발생 며칠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개신교인으로서 이 일에 대해 대신 사과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진정성을 전하기 위해 그해 5월까지 불당 복구를 위한 모금 운동도 벌였다. 불교계는 손 교수를 "종교평화의 마중물"이라며 고마워했다. 게다가 손 교수의 사과가 미담으로 널리 퍼지면서 지금까지 훼불사건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훼불사건 사과했다고 파면
종교인으로서 행한 양심적인 행동이었건만 정작 자신이 속한 학교에서는 '징계사유'가 됐다. 사과와 불상 복구 모금활동이 교인으로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일더니 2017년 2월 대학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손 교수를 파면했다.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해야 할 교수가 "그리스도교회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했다"는 이유였다.
손 교수는 "기독교의 기본 정신이 사랑인데, 참담했다"면서 "그냥 순순히 수용하고 다른 학교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선생으로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신조와도 어긋나는 일이라 바로잡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학교를 상대로 파면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냈고 지리한 법정 싸움 끝에 지난해 10월 서울고법에서 최종 승소했다.
법원 판결문까지 받아들었지만, 대학은 여전히 손 교수의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 4월 대학법인인 환원학원 이사회까지 법원 판결에 따라 손 교수의 복직을 최종 의결했는데도 학교가 나서서 거부하고 있다. 현재 캠퍼스 정문에는 '이단을 받을 거면 차라리 학교 문 닫아라'고 쓰인 현수막이 흉물스럽게 걸려 있다.
'초기교회' 정신이 좋았던 대학이었는데
확정 판결을 받은 만큼 대학 측의 행태는 위법하다. 게다가 승소 이후에도 손 교수는 여전히 월급을 못 받고 있어 생활고에 놓여 있다. 손 교수는 "대학이 버틴다면 법원 판결의 이행을 강제하는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아직은 대화로 풀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탄압한 학교지만 여전히 애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울기독대는 교파를 초월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초기교회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 정신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그 뜻이 좋아서 임용에 지원했고, 아담한 캠퍼스에서 20여년간 지내며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손 교수는 학교와 다투는 동안 새로운 직업도 얻었다. 이른바 '가나안 교회' 목사다. 신자 수가 무려 200만명에 달해 기네스북에 오를 수준이다. '가나안'은 교회에 '안 나가'를 거꾸로 한 말. 신앙심은 있는데 교회의 적폐에 실망해 교회 가기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손 교수는 매주 '가나안' 신자들을 모아 신학에 대해 토론하고 예배를 드린다. 물론 예배당은 따로 없고, 카페나 회의실 등 모임 장소는 다양하다. 손 교수는 "개운사 훼불사건이나 코로나19 사태에서 일부 개신교인들이 보인 이기주의 탓에 가나안 신자는 급증하고 있다"며 "훼손된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는 '환원운동'이 그 어느때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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