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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으로 만나는 하나님

입력
2020.09.16 16:00
수정
2020.09.16 18:2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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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에배가 '줌(zoom)' 화상예배로 진행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에배가 '줌(zoom)' 화상예배로 진행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비대면의 신앙을 하라니 참담했다. 약 2,500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의 토로다. 동편 바벨론 제국이 쳐들어와 하나밖에 없는 그들의 성전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기적으로 하나님을 대면했던 백성인데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앙의 핵심이던 성전을 잃자 그들을 오히려 유대교라는 고등 종교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들여놓으며 너무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옷이 흘러내려 노출사고를 일으킬 정도였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상자였는데, 다윗은 이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짓고 싶었다. 그는 건축을 준비했고, 아들 솔로몬이 완공했다.

성전은 원어로 ‘하나님의 집’이라고 자주 명시되었는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성전은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머물러 사는 집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 년에 세 번 성전으로 찾아와 하나님을 뵙고 가야 하는 율례도 있었다. (출애굽기 23:17). 이렇게 그들은 하나님을 ‘대면’했었고, 이는 주변 민족들도 공유했던 적법한 믿음이었다.

이 때문에 무너진 성전을 눈앞에 두고 이스라엘은 망연자실했다. 하나님과의 ‘대면’을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이 부서진 집에 가끔 찾아 올 것이라고 믿어서였을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그들은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사실 신이 어떤 물리적 처소에 임재한다는 사고는 매우 원시적인 단계의 종교 개념이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대면이 막히자, 이런 원시적 믿음을 넘어 설 수 있었다. 신의 임재는 무소부재(無所不在, omnipresent)하다는 형이상학적 신학 개념이 우위에 섰다. 특히 비록 성전에 갈 수는 없어도 어디서든 삼삼오오 모여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한다는 진보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고대 이스라엘 종교사에 비로소 성경이 도입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갈 때만 해도 제대로 된 성경이 없었다. 그들 신앙의 중심이 성전에서 드리는 제의였기 때문이다. 포로기는 성경의 태동기였고,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역사상 최초의 성경공부가 발생했다. “그들은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어 주었다. 율법책이 낭독될 때에 뜻을 밝혀 설명해 주었으므로 백성은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백성은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다. 모든 백성은 배운 바를 밝히 깨달았으므로, 없는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크게 기뻐하였다.”(느헤미야 8장 발췌).

그들은 성전을 잃고 성경을 얻었다. 이것이 출발점이 되어 성경을 읽는 회당과 함께 유대교가 도래했다. 유대교의 회당은 후에 기독교 교회의 모델이 되었다. 성전에서 만나는 대면의 하나님이 아닌, 묵상 속에서 만나는 비대면의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 종교사에 있어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유대-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경전이 도입된 것이다. 그래서 벨하우젠이라는 학자는 이스라엘 포로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나라로서 끌려갔지만 교회가 되어 돌아왔다.” 성전도 다시 세워졌으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추잡한 욕망의 산실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비통하게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아마도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교회라는 처소를 중심으로 한 회중 예배에 너무 길들여졌었나 보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예배 양식을 맞게 되자, 성전 잃은 포로기의 이스라엘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한다. 욥기는 성경의 지혜문헌 중 고난을 깊이 다룬 책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신앙인의 위기가 바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겪었던 욥에게 지인들이 찾아와 “주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그 모든 재앙을 생각하며”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욥기 42:11). 비대면 예배의 아쉬움은 정치나 이념, 반기독교 정서로 인한 것도 아니다. 기독교회가 앙망하는 절대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비대면 예배의 위기 속에 교회는, 이 시기에 한국 기독교의 혁명적 전환을 이끌라는 하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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