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해 크리스마스 직전에 갑자기 목이 아파 구부리거나 돌릴 수 없게 되어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목뼈가 일자로 늘어선 일자목이 되어 있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목에 과도하게 무리가 가해졌던 것 같다. 뒤퉁수로부터 목, 어깨를 거쳐 가끔은 위팔까지 뻗쳐 나가는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목과 어깨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으니 그 불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럴 때 목과 어깻죽지, 팔을 주물러 주면 조금은 나아지곤 했다.
안타까운 점은 뒷목이나 목뿌리는 양손 중 어떤 손을 사용해도 주무를 수 있는데 어깻죽지나 위팔 부위는 두 손을 모두 사용해서 마음껏 주물러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오른팔이 아프면 왼손으로 주물러 주어야 하고 왼어깨가 아프면 오른손으로는 주무를 수 있는데, 오른팔이나 오른어깨를 오른손으로 주무를 수는 없다. 아플 때뿐만 아니라 가려운 곳을 긁을 때도 마찬가지로 왼손으로 왼팔을 긁을 수 없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명의라 해도, 자신이나 자신 가족의 병에 대하여는 여러 이유로 제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중에 내가 아프게 되었을 때 나를 맡기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의사가 돼라"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좋은 경우가 있는 법이다.
세상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있고 남이 있다. 나와 남은 오른팔과 왼팔처럼 비슷하지만 다르다. 팔 하나로도 웬만한 일은 잘 할 수 있지만 두 팔이 서로 돕고 협력하고 연대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결자해지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풀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때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고리를 풀어 주어야 한다. 자신의 두 손을 노끈으로 묶어 봐라. 얼마나 어려운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남의 두 손을 묶는 것은 아주 쉽다. 푸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묶여있는 두 손을 풀려면 남의 손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의료계를 뒤흔들었던 의사 파업이 만만치 않은 고민과 숙제를 지닌채 휴전에 들어갔다. 파업을 선동하였던 의협은 정부여당, 보건복지부와 협약을 체결하여 제기된 문제에 대하여 서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면서 후퇴를 결정했다. 그러자 선봉에서 전투를 벌이던 전공의들이 진료에 복귀하였고, 학생들만 전쟁터에 남겨졌다. 전쟁을 벌인 장군은 휴전을 하고, 전투 중이던 정규군은 후퇴를 하면서 학도병들만 보호 장치 없이 전쟁터에 남겨 두고 떠난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너희 스스로 전장으로 간 것이니 살든 죽든 너희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이 냉엄하고 잔인한 현실을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납득시킬 것인가?
의사국가고시를 거부하던 의대생들이 단체행동을 잠정 유보하기로 했지만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다시 국시의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언론에 흘러다닌다. 얼마 전까지 학생들이 국시를 거부하고 정부당국에서는 국시를 치르라고 하던 것과는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이 다툼의 원인과 상황이 이렇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훗날 역사가들이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휴전을 하기로 한 이상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 지금 무기도 없이 전장에 남겨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는 출발하였는가?
의료계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의 의미와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정부는 의료계의 입장과 주장을 반영하여 정책을 수정하도록 노력하면서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앙금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오른손으로 왼팔을 긁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대화가 난관에 봉착한다면 그때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단체든,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팔이 두 개인 이유나 남의 팔을 빌리는 것 모두 서로 도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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