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들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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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들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자

입력
2020.09.11 14:40
수정
2020.09.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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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팀의 막내인 주제에 조직의 마지막 희망이라도 된 것처럼 밤낮없이 과로하던 친동생은 결국 병이 났다. 수술과 입원, 지겨운 통원치료를 하며 상한 몸을 추스르느라 동생은 한동안 일을 쉬어야 했다. 한 번 무너진 건강을 다시 되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 같았다. 타고난 건강체질이었던 동생은 이제 다양한 이유로 골골 앓는다. 그는 어느덧 삶의 필수 요소가 되어버린 영양제를 아침, 저녁으로 챙겨 먹으며 과거를 후회한다. 버티지 말 걸, 도와 달라고 할 걸, 못 하겠다고 얘기할 걸, 후회 하나에 알약 하나, 후회 두 개에 알약 두 개를 꿀꺽 삼키는 동생의 모습은 쓰디쓰다.

얼마 전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동생과 한때 같이 일했던 후배였다. 전화기 너머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듣자 하니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일 하다가 울컥해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동생은 한참을 잠자코 듣다가 말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돼. 도와 달라고 해. 너무 무리하지 마.”

전화 속의 여자애는 더 크게 울먹이며 ‘무서워서 못 하겠어요. 선배들이 일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하더니 우와앙 울어버렸다. 동생은 우는 애에게 도움을 구하라고 거듭 조언했고 우는 애는 혼자서 버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동생은 ‘너 그러다 나처럼 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말했다.

“어째서 막내들은 하나같이 같은 병을 앓고 있을까?

“무슨 병?”

“힘들다고 말하면 죽는 병”

나도 그런 막내 시절을 보냈다. 내 능력 밖의 일인 줄 알면서도 못 하겠다, 어렵다, 도와 달라는 그 짧은 말이 안 나와서 몇 날 며칠 잠을 줄여가며 일했다. 무식하게 버티다보니 체력이 동나기 일쑤였다. 지쳐 서러울 때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죽는 소리를 했다. 친구들이 여러 가지 조언을 했지만 모두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사회 초년생의 심리는 잘못된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리와 어딘가 닮아 있다. 해답을 구하며 제 3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만 모든 조언을 무시하고 결국 자신의 고집대로 한심한 자기 파멸의 길을 택한다.

제 때 먹지 못해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일을 하던 어느 날. 이러다간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결국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가 며칠 동안 끙끙댔던 일을 선배는 찌개 위의 거품을 걷어내듯 아주 손쉽고 깔끔하게 해결했다. 그때, 나에겐 없지만 선배에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연륜이었다. 그것은 선배가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직 충분히 배우지 못한 나는 서툴고 부족한 것이 당연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진작 깨닫지 못한 탓에 괜한 무리로 몸과 마음을 해쳤다.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전력 질주를 꿈꾸며 애꿎은 무릎팍만 박살낸 꼴이었다.

방송국의 엘리베이터에서 수많은 사람과 마주친다. 그중 너무나 막내의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때면 괜히 애틋해져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다. 무리하지 말라고, 지금은 서툰 게 당연하다고, 시간이 지나면 잘하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아무것도 당신 탓이 아니라고. 내가 너무 늦게 알아챈 사실을 그는 너무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라며 마음으로 응원한다.



강이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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