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변화 속도 빨라진 노동시장
새로운 양상의 고용 불평등 해결하려면
‘정규직처럼’이란 낡은 관념부터 버려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얼마 전 미국 보수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칼럼이 냉소적 제목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노조가 긱(gigㆍ임시직) 노동자를 고용 유연성에서 해방(liberate)하려 한다’라는 제하의 글이었다. 조합원 감소로 고민하는 미국 노조와 친 노조 성향 주정부가 급증하는 긱노동자를 노조에 끌어들이려 하지만, 정작 긱 노동자들은 노조원 자격을 얻기 위한 정규직 지위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수ㆍ진보 연구단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긱 운전자 중 정규직을 원하는 비율이 15%에 그쳤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급증하는 대리운전 기사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를 실직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고용보험료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재계의 반대는 예상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경제연구원 조사결과 보험설계사, 택배 기사, 골프장 캐디 등 특고의 63%가 고용보험 의무 가입에 반대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특고가 겉으로는 보험료 부담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지만, 자신들의 소득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불안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특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세청의 ‘2014-2018년 귀속 사업소득 지급명세서 제출 현황’을 분석한 것이 최신 자료인데 플랫폼, 특고, 프리랜서 등 법적으로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영업형 노동자’가 4년간 210만명 늘어났다. 이 중 160만명이 기존 업종 코드에 등록조차 되지 않은 새로운 직종이었다. 하지만 이 통계 역시 상당수가 사업소득을 신고하지 않는 현실과 코로나19로 신종 특고가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를 고려하면 실상을 파악하기에 매우 부족한 추정치이다.
코로나 19 이후 고용 불평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그 불평등의 가장 큰 간극은 더 이상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가 아니다. 코로나19 감염 공포를 피해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관리직ㆍ전문직과 감염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생산직이나 판매ㆍ배달 등 특고 사이에서 벌어진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일자리 재시동(rebooting)’을 장기 기획으로 연재하고 있는데, 지난 7일자 기사에서 이런 노동 불평등 확대 경향은 ‘위계의 불평등에서 개인 역량의 불평등’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용 불안정 보상수당’(가칭)은 이런 코로나19 시대의 고용 불평등에 대한 참신한 해결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내년부터 경기도 공공부문에 적용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는 정책이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 또 비정규직 중에도 고용 기간이 짧을수록 보상 성격의 수당을 더 많이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프랑스는 총임금의 10%를 고용 불안정 수당으로, 호주는 15~30%를, 스페인은 5%를 추가 지급하고 있다.
‘보상수당’은 시장 원리를 통해 임금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정부의 ‘전 국민 고용보험’보다 행정 비용도 훨씬 적고 수혜자가 소득 정보를 노출해야 할 부담도 줄어든다. 장기적으로는 정규직에 대한 낡은 신화를 퇴색시켜 노동시장 경직성을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점 때문인지 국민의힘 경제혁신위원회도 ‘보상수당’ 도입을 노동분야 핵심 과제에 넣었다. 여당 유력 대선주자와 야당의 정책이 일치하는 희귀한 상황이 연출됐다.
정부가 정규직 대우를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정부 감시망에 들어온다면 고용 불안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꼰대식 발상을 계속 고집한다면, 코로나19 시대 새로운 고용 불평등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보상수당’이 비효율과 불평등이 극심한 우리 노동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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