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면 중간 중간 하얀 막이 있고 막들 전후좌우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리는 의사도 있고, 틸란드시아 같은 이국적 식물들도 놓여져 있다. 그 바닥엔 뒤집어진 운동화, 화살, 사슴벌레 표본이 담긴 액자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무언가의 뒤에서 숨어 튀어나와 있는 손들이 있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일부러 어지럽힌 듯 놓인 이 풍경이 어리둥절할 때쯤 막뒤에 숨어 막에 뚫린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보인다. 발끝으로 딛고 서야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구멍. 그 구멍으로는 이 풍경의 일부만 보일 뿐이겠지만, 그럼에도 제각각의 그 물건들은 존재한다. 안 보이지만 분명 거기 있는 것들이다.
서울 가회동 아라리오뮤지엄 인스페이스에 개막한 이진주의 개인전 키워드는 그래서 '사각(死角ㆍThe Unperceived)이다.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 시야의 한계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거니 왜곡되기 일쑤인 사각.
작가는 그림 자체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의 소극장 공간 자체를 사각이란 콘셉트에 걸맞게 구성했다. 보통 그림은 벽에다 걸지만 전시장 중앙에다 큰 A자 형태로 작품을 설치해둔 것. 그것만으로 불안했던지 양면화 ‘(불)가능한 장면’에다가는 아예 경주마가 옆을 보지 못하도록 씌우는 차안대 역할을 맡은 목재판까지 덧대 두었다. 그림 자체를 어슷하게 비틀어 세워둔데다, 이런 차단 장치(?)까지 마련해뒀으니, 여느 전시장과 달리 갤러리 안에 들어서서 작품들을 한 눈에 일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그림들을, 이렇게 배치한 건 결국 작가의 의도다. 전시장을 거닐면 삶과 죽음 사이의 불가해함, 파괴되어가는 환경, 끝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 믿음의 방향,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들이 드문드문 볼 수 있다. 이 풍경들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바로 내 눈 앞에 확실히 존재하는 것도 돌아서면 사라지고 잊어버리게 된다.
갤러리 안을 돌다 전시장 내부의 낮은 계단을 올라서서 ‘사각’을 보면 A자 구조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작품 하나를 마침내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기도하는 손'이다. 이 기도하는 손은 갤러리를 스쳐갈 수많은 대부분의 관람객들 눈엔 보이지 않을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이 손은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
"원래 조금 어두운 풍의 작품을 많이 했지만,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상황을 보면서 생명력, 생기, 서로와의 관계 같은 것들을 본능적으로 작품에 담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이 와중에도 누군가 기도하고 있음을, 비록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더라도 기도하는 손은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는 당부다. 전시는 내년 2월까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