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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과 뒷간

입력
2020.09.09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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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앞산전망대. 대구 남구 제공

대구 앞산전망대. 대구 남구 제공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옆에 앉은 대학생과 말을 나눴다. 전공이 건축학이라고 소개한 그 학생은 건축물과 관련된 생활 지식에 관심이 많았다. 대구에서 산다고 했더니, ‘대구에 앞산이 있다면서요?’라며 ‘앞산’이라는 지명을 궁금해했다. 앞산은 마을이나 집의 앞쪽에 있는 산이다. 한국 사람들은 빛이 잘 드는 남향집을 좋아한다. 남향집에서 일어나 앞문을 열면 보이는 산이 앞산이고 남산이다. 앞산은 대구만이 아니라 인천과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곳곳에 있다.

말은 삶이다. 사람의 생활 속에는 방향 정보를 담은 고유어가 많다. 남쪽을 담은 고유어만 해도 그러하다. ‘앞’이란 향하고 있는 쪽을 뜻한다. 집이나 마을의 앞에 있는 길은 ‘앞길’이다. 마을 앞쪽에 있는 벌판은 ‘앞벌’이고, 거리로 따졌을 때 육지에 가장 가까이 있는 바다는 ‘앞바다’이다. 뱃사람들의 말로 ‘앞바람’은 마파람, 곧 남풍을 뜻한다. 앞뜰, 앞산처럼 남쪽을 바라보며 따스함을 떠올리는 일반인들은 앞바람을 기다린다. 배를 밀어줄 바람을 기다리는 뱃사람들은 이와 처지가 다르니 앞바람이 얄미웠을 것이다. 앞바람의 다른 뜻은 ‘배가 가는 반대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앞쪽의 반대는 뒤쪽이다. 집의 뒷마당에는 ‘뒷간’이 있다. 조상들은 생활 공간 가운데 가장 온도가 낮은 곳에 뒷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남향집의 뒤편, 즉 집의 북쪽은 언제나 그늘이 지고 겨울이면 ‘된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밝음으로 표현되는 앞과 달리, 뒤는 고됨으로 그려진다. 앞산과 뒷간. 말이 삶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삶이 곧 말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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