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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440명'으로 버티나… 국시 갈등이 빚어내는 대형 의료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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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440명'으로 버티나… 국시 갈등이 빚어내는 대형 의료공백

입력
2020.09.07 17:50
수정
2020.09.07 18:0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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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당 인턴 100여명 필요…국시 접수 고작 446명
의대생들 국시거부로 매년 전공의 대거 부족 우려
정부 "구제 없다"에 의협은 "합의 의미 없을 수 있다"

의사 국가시험(국시)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시 접수처인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별관이 한산한 모습이다. 정부는 이날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의 응시율이 14%에 그쳤지만, 예정대로 8일부터 시험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의사 국가시험(국시)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국시 접수처인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별관이 한산한 모습이다. 정부는 이날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의 응시율이 14%에 그쳤지만, 예정대로 8일부터 시험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의사 국가고시(국시) 실기시험(8일 시행)을 둘러싼 의대생들과 정부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멈추지 않고 있다. 국시 시행 전날인 7일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에 대해 정부가 "더 이상의 구제책은 없다"며 6일 밤 12시 접수 마감 후 재응시 기회 제공을 거부한데 이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곧바로 "국시 거부 의대생을 구제하지 않으면 (의정)합의는 의미없다"고 맞대응했다. 공공의대 추진 등 정부의 4대 의료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하며 어렵게 일궈낸 의정 합의를 무산시킬 새로운 뇌관으로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가 등장한 셈이다.

사실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다시 유발할 위험요소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자칫하면 이번 국시를 통과해 내년부터 수련의로 일해야할 현재 의대 본과 4년생 대다수의 의료현장 진입이 늦어지면서 장기간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정 갈등이 빚어낸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가 결국 국민의 건강권을 오래도록 침해하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생들의 국시 응시 거부는 당장 내년 수련병원들의 인력 결손을 불러오게 된다. 주요 수련병원만 보더라도 매년 병원마다 전공의(인턴ㆍ레지던트) 100~500명을 확충하는데, 이 중 국시를 거쳐 의사로 첫발을 딛게 되는 인턴만 100명 안팎이다. 매년 충원하는 인턴은 올해 기준 서울성모병원(가톨릭중앙의료원 일괄 선발) 248명, 서울대병원은 180명, 서울아산병원은 110명, 삼성서울병원 100명, 연세세브란스병원 92명, 중앙대병원 42명이다. 올해 국시에 응시하는 440여명이 내년에 모두 의료현장에 투입된다고 가정하더라도, 당장 서울 대형병원들의 수요도 채우지 못하면서 대규모 진료 차질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일선 병원에 인턴이 부족한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 연차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내년엔 인턴이, 그 다음 해에는 전공의 1년차가 사라지며 톱니바퀴처럼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국시 합격생(의대 졸업생) 배출이 1년 늦춰지더라도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시 응시대상 3,172명(의대 본과 4년생) 중 14%(446명)가 시험에 응시할 예정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중보건의사나 군의관은 필수배치 분야 중심으로 조정하면 큰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의대 졸업자들이 인턴 또는 전공의 수련 후 병역을 신청하는 일이 많아 종래에도 1~4년의 공백은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어 “1년간 의대 졸업생들이 늦춰진다고 병역자원이 일시적으로 크게 차질을 빚지는 않는다”며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필수 분야 중심으로 배치를 조정하고, 필요하다면 정규의사 인력을 고용하는 등 농어촌 취약지 보건의료에 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준비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원칙론은 국민들의 지지도 얻고 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국시 접수 취소한 의대생들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은 44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의대생 구제 차원이 아니라 한국 의료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보건의료팀장은 “전공의가 파업한다고 진료가 마비되는 의료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해외에서는 교수가 아니더라도 전문의들이 종합병원에 남아 필수의료 업무를 맡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대형병원은 오랜 기간 전공의에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계 총파업만 보더라도 의료공백이 두드러졌는데, 국시 응시를 거부한 졸업생들이 공급되지 않으면 의료인력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그럼에도 여러 국가시험 응시대상자 중 의대생들에게만 재응시 기회를 주는 등 재차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미 국시 신청기간을 일주일 연장하고 시험 일정도 11월 이후로 한 차례 조정하는 등 의대생들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수차례 양보했다. 이런 가운데 시험 접수 마감일에 응시 거부 의사를 밝힌 의대생들에게만 또 다시 원칙을 접고 양보한다면 다른 국가시험과의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국시 응시 거부는 막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년 이상 경력의 다른 의사는 “의협이 정부와 협상해서 사실상 백기투항을 받아냈는데 교수들이 ‘일단 멈추자’고 학생들을 설득해 시험은 보게 했어야 한다”며 “교수들이 책임지지 못할 상황인 것을 알면서 시험 거부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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