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문희'의 두원은 억울하다. 치매를 앓는 노모 탓에 배 속 아이를 잃었고, 아내는 도망갔다. 노모와 남겨진 유치원생 딸 아이를 홀로 돌보는 삶은 버겁기만 하다. 그 와중에 금쪽같은 딸은 뺑소니 사고를 당한다. 유일한 목격자는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노모뿐. 억장이 무너진다.
두원을 연기한 배우 이희준(41)은 지난 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에 젖는 편인데 이번에는 스태프가 '희준씨, 항상 너무 억울해보여'라고 하더라"며 "이 작품을 하면서는 계속 억울한 눈빛이 됐던 거 같다"고 말했다. 이달 2일 개봉한 '오! 문희'는 모자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이희준과 국민 배우 나문희(79)가 뺑소니범을 직접 찾아나서는 '농촌 수사극'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이후 유일하게 개봉한 한국 영화로, 전체 박스오피스에선 '테넷'에 이은 2위를 달리고 있다.
이희준은 "어떻게 보면 소시민으로, 보잘 것 없는 시골의 무식한 청년이 딸 아이의 뺑소니 사고를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고 신이 났다"며 "이제 9개월 된 내 아이를 한 두 시간 안고 있는 것도 힘든데 두원은 여섯 살 딸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치매 어머니까지 모신다는 게 정말 존경스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올 초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말끝마다 욕설을 내뱉던 100㎏ 거구의 경호실장 역할이었다. 이번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엄니~"를 외치는 억울한 얼굴이니 큰 반전이다. 경호실장 때는 25㎏을 찌웠는데, 이번엔 그 살 다 빼고 충청도 사투리까지 연마했다.
대구 출신인 그는 경상도 사투리 대신 충청도 사투리를 장착하기 위해 코미디언 최양락의 영상을 많이 봤다고 한다. 실제 치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충남 논산의 한 농가에서 먹고 자기도 했다. "새벽에 부모님이 맨발로 나가시면 대화 도중 '잠깐만'하고는 태연하게 나가 다시 데려와 눕히시더라고요. 되게 속상할 것 같은 일이 아니었어요. 그런 경험이 두원을 연기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치매 노모 나문희는 이번 영화에서 처음 만났다. 나문희는 이희준을 "치밀하고 섬세하며 자기 내면이 확실한 배우"라 칭찬했다. 이희준은 "촬영 일주일쯤 됐을 때 선생님이 '너무 잘한다. 마음대로 해 봐. 다 받아줄게'라고 인정해주신 게 기억난다"며 "한국 나이 여든인데도 항상 입으로 말하고, 외우고, 대본 연습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촬영에 임하는 태도와 삶의 태도에서 큰 가르침을 얻었다"고 했다.
관객들이 명장면으로 꼽은 엄니가 두원에게 동그랑땡을 먹여주는 장면 역시 두 배우의 연기 내공이 빚어낸 장면이다. "제가 울먹울먹 하니까 선생님이 제 입에 동그랑땡을 넣어주셨어요. 애드리브로 만들어진 장면이죠." 그는 "두원에겐 너무 버겁고 짐짝같은 가족이지만, 두원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끝까지 곁에서 지켰을 것 같다. 그래서 더 멋있다"고 덧붙였다.
이희준은 뒤늦게 연기를 시작한 배우다. 잘 다니던 영남대 공대를 중퇴하고, 연극판에 뛰어들어 2012년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얼굴을 알렸다. 2018년에는 단편영화 '병훈의 하루'로 감독 데뷔도 했다. 공황장애를 앓았던 자기 경험으로 만든 영환데 "아무도 안 만들어줘서" 직접 찍은 영화다. 그는 "감독이 여기서 뭘 원할까,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연기하면서 좀더 감독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라 말했다.
차기작은 배우 이성민과 함께하는 코미디 영화 '핸섬가이즈'다. tvN 드라마 '마우스'로 내년 상반기 안방 복귀도 노린다. 콜롬비아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 '보고타'는 코로나19로 촬영이 멈춘 상태다.
이희준은 아직도 연기 만큼 재밌는 게 없다며 웃었다. "대본만 보고도 가슴이 뛰고, 재밌겠다 싶은 건 언제든 뛰어들고 있어요. 언젠가는 '연애의 목적' 같은 멜로 영화를 꼭 해보고 싶어요. 멋있는 멜로 말고 현실감 있는 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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