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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보도사진에서 흑인만 뺐다...인종차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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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보도사진에서 흑인만 뺐다...인종차별 논란

입력
2020.09.04 08:00
수정
2020.09.04 09:34
0 0

AP,? 다보스포럼 환경운동가 5명 중 백인 4명만 보도
"유색인은 환경보호에 뒤처진다는 이미지 심어" 비판


선진국은 환경보호에 열심이지만 경제성장이 급한 개발도상국은 소홀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이른바 서구 선진국들 언론 보도의 영향이 크며 환경보호 보도에도 인종 차별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츠지 쇼지(六?彰二) 일본 정치학자는 3일 포털 사이트 야후에 '그레타 현상 뒤에 '사라진' 흑인 활동운동가-환경보호에 있어서의 인종차별'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실제 개발도상국에서도 환경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데 서구 언론이 이를 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세계 5명 환경운동가 보도 사진 중 흑인만 쏙 빠져

바네사 나카테 트위터 캡처

바네사 나카테 트위터 캡처


무츠지는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참가한 전 세계 5명의 차세대 환경운동가들에 대해 보도한 AP통신의 사례가 환경보호에서의 인종차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AP통신은 세계 각국의 젊은 여성운동가 5명을 촬영했는데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 출신 그레타 툰베리를 돋보이게 한 반면 왼쪽 끝에 서 있었던 우간다의 바네사 나카테는 보이지 않게 한 채로 보도했다. 사진에서는 툰베리와 스위스의 로키나 틸레, 독일의 루이사 뉴바우어, 스웨덴의 이사벨레 악셀손 등 4명의 '백인' 환경운동가들만이 등장하고, 유일한 흑인 운동가였던 나카테의 모습이 편집돼 사라진 것이다.

나카테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살면서 처음으로 '인종차별'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이해하게 됐다"며 분노와 허탈감을 드러냈다. 이어 단순히 개인을 지운 게 아닌 '아프리카 대륙'을 세계에서 뺀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인종차별 시선에 굴하지 않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환경보호에 열심인 것은 백인(선진국)이고, 유색인(개발도상국)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미지라는 지적과 비판이 거세지자 AP통신은 "사진 구도상의 문제였을 뿐 의도는 없었다"며 사진을 고쳐서 다시 공개했다. 하지만 무츠지는 이 사건이 환경운동 활동과 보도에 있어 뿌리 깊은 백인 중심의 의식을 드러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환경운동가 대다수 살해, 탄압 등 위험에 노출


2016년 3월 온두라스의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가 괴한에 의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은 2017년 주멕시코 온두라스 대사관 앞에 카세레스의 사진과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과 꽃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모습.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2016년 3월 온두라스의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가 괴한에 의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은 2017년 주멕시코 온두라스 대사관 앞에 카세레스의 사진과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과 꽃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모습.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무츠지는 미국·유럽 등의 선진국 정부는 환경보호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며 개발도상국 정부는 이에 소극적인 측면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보면 나카테를 포함해 개도국에서 환경보호를 요구하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 호주 퀸즐랜드대 나탈리 버트 교수 등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7년까지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환경보호 문제로 살해된 희생자 수만 최소 1,558명. 대부분이 중남미 국가 등 정부의 투명성과 기본권은 낮고, 타락지수가 높은 개도국에서 나왔다.

이러한 '환경 살인' 표적의 대부분은, 농지나 광산 개발, 댐 건설 등을 위해서 삼림 벌채를 반대하는 활동가나 원주민이다. 이들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로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이나 경비업체라는 이름의 용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2016년 온두라스의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도 그가 반대하던 댐 건설을 추진한 에너지 기업 DESA의 최고경영자가 살해를 교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츠지는 그러면서 "선진국에서는 인신공격은 있지만 생명이나 안전이 위협받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반면 개도국에서는 살해당하거나 탄압당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나카테처럼 개도국 환경운동가가 세계 무대에 서는 것은 신체 안전을 위협 받을 각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근 비정부기구(NGO) '글로벌위트니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환경운동가가 목숨을 잃은 212명 가운데 절반은 콜롬비아(64명)와 필리핀(43명)에서 발생했다. 이어 브라질(24명), 멕시코(18명), 온두라스(14명) 순으로 살해된 환경운동가의 약 3분의 2가 중남미 국가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AP사진, 개도국 환경보호운동가 노력 묵살한 것"

바네사 나카테가 AP사진에서 자신이 편집된 것에 대해 항의하자 이에 대해 응원의 트윗을 한 그레타 툰베리. 그레타 툰베리 트위터 캡처

바네사 나카테가 AP사진에서 자신이 편집된 것에 대해 항의하자 이에 대해 응원의 트윗을 한 그레타 툰베리. 그레타 툰베리 트위터 캡처


무츠지는 "백인만 찍힌 AP의 사진은 결과적으로 개도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환경보호에 나선 사람들을 묵살한 셈이 됐다"며 "이런 의미에서 나카테가 당신들(AP)은 단지 사진을 지웠을 뿐이 아니라 한 대륙을 지웠다고 항의한 것은 납득이 된다"고 설명했다.

무츠지는 또 AP가 나카테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설사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해도 개도국 정부뿐 아니라 이를 지원하는 선진국 정부나 기업에 대한 비판을 감추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개도국 내 개발의 상당수는 해외 정부나 기업이 관련돼 있다.

앞서 언급한 온두라스의 경우 댐 개발에는 중국 기업뿐 아니라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등 해외 여러 정부가 자금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온난화 대책에서 주목 받는 리튬 이온전지 생산에 꼭 필요한 코발트도 환경 파괴를 감수하면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산출되지만 이를 사들이는 국가 역시 선진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진국에게 이익이 될 경우, 개도국 정부가 환경 보호에 소홀하더라도 이를 비판하기 보다는 관대하게 대하려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무츠지는 "AP의 사진은 (환경운동에) 의식이 높은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개도국이라는 틀에 박힌 이미지를 재생산했다"며 "구조화 된 차별의 위상을 드러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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