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ㆍ 간호사 등 여러 주체 참여 사회적기구 필요
2000년 의약분업 때처럼 '밀실합의' 안돼
전문가들 "논의 장을 넓혀 여러 당사자 이익 담아야"
의료계가 3일 '단일 합의안'을 마련하면서 정부ㆍ여당과의 대화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대화 방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파업 중단에만 급급해 합의를 서두르기보다는, 다양한 의료계 종사자와 환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꾸려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들을 배제한 채 의정간 밀실야합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기형적 졸속 협상을 즉각 중단하라”며 “국회 내에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어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단체, 환자단체, 시민단체 등과 함께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를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 180여개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간호사, 의료기사, 약사 등 60여개 직종의 보건의료노동자 7만2,000여명이 가입된 노조다.
노조는 의사 인력 확충 문제는 의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권과 보건의료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정부가 의사들과만 대화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 정원을 의사가 정한다면 앞으로 법학전문대 정원은 변호사가, 교대 정원은 교사들이 정해야 한다”며 “관련 당사자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돼야 하지만, 공공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직역의 정원 문제는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계에서 이처럼 논의 방식을 우려하는 것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의 경험 때문이다. 의사단체, 약사단체만을 중심으로 협상을 벌였던 정부는 의약분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의대 정원 10% 감축’을 의사단체에 약속했고, 그 외 합의문 조항들도 의정 간 ‘밀실 담합’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대 정원 축소는 당시 의사들의 공식 요구사항도 아니었는데 정부와 의사들이 밀실합의했다”고 비판했다. 2000년 합의로 정부는 당시 3,253명이던 의대 정원을 2006년까지 3,058명으로 단계적으로 줄였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대 정원은 3,058명에서 단 한 명도 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2000년 의정 합의 때 이뤄진 의대 정원 감축이 지금의 의정 갈등 핵심인 의대 정원 증원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번에도 의사들의 빠른 파업 중단을 위해 정부ㆍ여당이 의사들과만 논의를 진행할 경우 비슷한 잘못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사 파업이 빨리 끝나는 것 보다 잘 끝나는 게 중요”하다며 “간호사, 환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이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여러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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