菲법원, 트랜스젠더 살해 미군 조기석방
親중국 두테르테 발끈... 인권단체도 가세
필리핀 법원이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이던 미군을 풀어주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우리가 여전히 미국 식민지냐"고 발끈했다.
3일 현지 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2014년 10월 필리핀에서 26세 트랜스젠더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필리핀 군사본부 특별감옥에 수감된 미 해병대 조셉 스콧 펨버튼 일병이 1일 필리핀 법원의 조기석방 명령을 받았다. 필리핀 군 관계자는 "아직 법원의 명령을 받지 못했지만 오면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대사관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법원 결정을 맹비난했다. 해리 로케 대통령궁 대변인은 "피해자의 죽음은 필리핀 주권의 사망에 빗댈 수 있다"면서 "끔찍한 방법으로 필리핀인을 살해한 펨버튼에 부과된 가벼운 형벌은 대통령의 독자적인 외교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식민지배 지위를 계속 누리고 있다는 걸 뜻한다"고 말했다.
인권단체들도 가세했다. '카라파탄'의 사무총장 크리스티나 팔라베이는 "법원 결정은 미국이 오늘날까지 필리핀 주권을 계속 압도하고 있다는 가장 악명 높은 증거 중 하나로 필리핀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 가족은 펨버튼의 석방 재고를 법원에 요청했다. "펨버튼이 일반 교도소가 아닌 특수시설에서 편하게 혼자 지내왔기 때문에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펨버튼 사건은 1999년 미국과의 방문군지위협정(VFA) 체결 이후 필리핀에서 미군의 법적 책임을 다룬 첫 사례다. 당시 펨버튼의 성소수자 혐오와 잔혹한 살해 방식에 필리핀 국민들의 반미(反美) 감정이 더해지면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미군은 VFA 규정에 따라 펨버튼의 신병 인도를 거부하다 반발이 거세지자 자국군 병사들의 직접 감시를 조건으로 신병을 인도했다. 당시 새뮤얼 라클리어 미국 태평양사령관과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관이 직접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결국 펨버튼은 공식 기소돼 최대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일반 교도소가 아닌 마닐라 군사본부에 수감됐다. 이후 10년형으로 감형되더니 이번엔 조기석방 명령을 받았다. 사건과 연관된 VFA는 올 초 두테르테 대통령이 미국에 파기를 통보했다가 6월 이를 보류한 바 있다.
이번 법원 판결과 관련해 인권단체들은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자인 필리핀에 공을 들이고 있는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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