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기자, 자전거 타고 태풍 속 배달 체험
2시간 동안 5건 배달해 2만2,000원 수입
음식점은 경쟁, 배달원은 안전 문제에 노출
"코로나 여파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주문량이 두 자릿수로 껑충 뛰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사람들이 외출 자체를 꺼리게 되면서, 음식을 배달시켜 집에서 먹는 수요도 크게 늘었다. 음식 배달앱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지난달 24~30일 일주일간 전체 주문 건수는 7월 동기에 비해 26.5% 증가했다. 주요 4개 배달업체의 7월 전체 결제액만 9,434억원에 이를 정도로 배달앱은 외식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난달 31일부터 오후 9시 이후 식당 이용이 금지되고 프랜차이즈 카페 이용도 중지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되면서 배달 주문량은 한층 더 폭증했다.
외식도 온라인으로 시켜먹는 신종 코로나 시대, 비대면(언택트) 소비의 활성화로 배달업 종사자들이 때아닌 호황을 맞은 듯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언택트 시대의 본격적 개막으로 쉴 틈 없이 바빠진 음식 배달원의 하루를 한국일보 기자가 직접 체험했다.
자전거ㆍ헬멧ㆍ배달가방만 있으면 나도 라이더
배달 대행기사를 일컫는 '라이더'가 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현재 배달 플랫폼인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에서 라이더를 모집하는데, 간단한 계약 절차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라이더 등록이 가능하다. 신분증과 통장사본을 인증한 뒤 온라인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반나절이면 바로 배달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필요한 준비물은 배달가방과 헬멧, 자전거 등 운송수단이 전부다. 도보로도 가능하다.
2일 오후 6시쯤 퇴근해 서울 송파구 집에 도착하니, 주문한 배달가방이 택배로 도착해 있었다. 배달앱 공식 쇼핑몰에서 약 1만원에 판매 중이다. 배달원이 되기 위한 자본금으로 치면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배달 요청을 받을 수 있는 라이더 앱을 휴대폰에 설치하고, 야간에도 식별이 잘 되는 형광색 자켓을 착용하고 문밖을 나섰다. 자전거의 전후방 전조등도 필수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배달하러 왔습니다"
라이더 앱을 켜자마자 20여건의 배달 요청 목록이 화면에 떴다. 마트의 식료품 배달부터 도시락, 부대찌개, 카레 등등 메뉴도 다양했다. 1분에 한 건씩 새로운 주문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정말 코로나 때문에 배달 주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수많은 배달 요청 중 현재 위치에서 약 800m 떨어진 프랜차이즈 분식집의 떡볶이 배달 요청을 받았다. 배달 목적지는 가게에서 약 1.4km 떨어진 한 빌라였다. 페달을 빠르게 밟아 음식점으로 향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아르바이트생이 주문한 떡볶이, 어묵, 식혜를 봉투에 담고 있었다. 옆에서 음식을 조리하던 사장은 "하루에 10건 내외의 배달이 있다"면서 "주문한 게 맞는지 가격과 메뉴를 잘 확인해 가져가라"고 했다. 주문 내용을 꼼꼼히 확인한 뒤 배달 중 음식이 손상되지 않게 배달 가방에 넣어 확실히 고정하고 첫 배달에 나섰다.
처음 가는 곳이라 배달 목적지 주소를 한 번에 찾기는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멈춰서 라이더 앱의 경로를 수차례 확인했다. 목적지인 빌라에 도착해 건물 입구의 인터폰으로 호출을 눌렀다.
"누구세요?" "분식 배달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승강기 안에서 마스크를 다시 한번 고쳐 썼다. 배달을 시킨 손님은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을 전달하고 라이더 앱의 '전달 완료' 버튼을 눌렀다. '배달료 4,500원'. 30분 만에 4,500원을 벌었다.
"문 앞에 놓고 가세요".. 코로나 시대의 배달이란
이런 식으로 닥치는 대로 배달 요청을 받아 몇 차례 배달을 해보니 "배달 대행에도 전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30분 동안 두 번 배달을 받아 9,000원을 벌었는데, 시간당 최저임금 8,590원과 비슷했다. 효과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선 동선 파악 등 머리를 써야했다.
배달의민족 커넥트에서 배달료는 통상 배달거리 1.5㎞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지역에 따라 소폭 차이가 있지만, 보통 1.5㎞ 미만은 4,000원, 이상은 추가 배달료가 붙는다. 기자처럼 원하는 주문을 선택해서 배달하는 것보다, 자동 배차 시스템을 이용하면 더 많은 배달료를 받을 수 있기도 하다.
이번엔 두 건을 동시에 배달해 보기로 했다. 마침 분식집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동시에 배달 요청이 들어왔는데, 두 가게 사이 거리가 2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다 배달 목적지도 같은 동선에 있었다.
이번 배달은 이전과 달리 2건 모두 배달 요청 사항으로 '문 앞에 음식을 놓고 벨을 눌러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이전에는 안전 문제 때문에 손님이 배달원을 직접 맞이하지 않는 비대면 요청이 많았는데, 코로나19로 비대면 배달이 더 늘었다고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문 앞에 아이스크림을 놓고 벨을 눌렀다. 라이더 앱의 '집 앞에 놓고 갑니다' 버튼을 누르고 내려가는 승강기에 탑승했다. 승강기 문이 닫힐 때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빗속, 텅 빈 거리를 달린다... 음식이 식기 전에
하지만 배달은 역시 쉽지 않았다. 이날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오후 9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데다, 계속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자전거를 타 숨이 가빠왔다. 마스크가 비에 다 젖어 준비해 온 여분의 마스크로 바꿔 착용한 뒤 배달을 이어갔다. 이미 옷은 땀과 비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마지막 배달은 횟집이었다. 회는 메뉴 자체의 단가가 높아 배달료 또한 다른 배달에 비해 1,000원 정도 높았다. 음식 조리 시간도 다른 곳보다 길어 정해진 시간에 배달을 완료하려면 속도를 내야 했다. 길이 미끄러워 휴대폰의 배달경로에 집중하면서 가다간 사고가 나기 십상이었다.
특히 전업으로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은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4~18년 5년간 국내 오토바이 사고는 연평균 6.3%, 사망자 수는 1.1% 증가했다. 전체 교통사고가 감소 추세인 것과 달리 오토바이 사고만 홀로 늘어나는 중이다.
코로나로 배달 늘었다는데... "우리 가게는 줄었어요
이날 5건의 배달을 하며 찾은 매장은 총 5곳이었다. 가게 사장들에게 "코로나19 때문에 배달 매출이 많이 늘었겠다"고 묻자 하나같이 "줄면 줄었지, 늘진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배달 외식'이 대세로 자리 잡았음에도 음식점별 주문이 늘지 않은 사정은 이랬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경우,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한 동네에 여러 매장이 들어서면서 배달 주문이 분산됐다고 한다. 외식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자, 본사에서 신규 매장 확보를 통해 매출을 늘리려고 거리가 가까워도 개업 승인을 내준다는 것이다. 주문량 증가가 매장 증가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면서 매출이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한 프랜차이즈 매장의 점주는 "올해 들어 이 동네에 같은 브랜드 매장이 2개가 더 생겼다"면서 "코로나로 주문량이 늘었다고 돈을 더 번다고 생각하시는데,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영세 업체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분식집 등 소규모 매장들은 총 매출의 70~80% 이상이 오프라인에서 발생했는데, 코로나19로 손님 수가 반의 반 토막이 났다며 울상이었다. 배달 건당 수수료를 내고 배달앱 상단 노출을 위해 광고료를 지출하면 남는 게 거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송파구에서 10년 넘게 분식집을 운영해온 한 점주는 "하루 빨리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면서도 "코로나가 없어져도 장사가 잘 될지는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라이더" 붐... 휴직 중 부업으로, 직장인 '투잡러'까지
배달의 최전선에서 뛰는 라이더들은 주문량 급증의 이득을 보고 있을까. 이날 기자가 약 2시간 동안 5건의 배달로 번 수입은 총 2만2,400원. 시급으로 환산하면 1만1,200원이다. 적지는 않지만 궂은 날씨에 들인 노력에 비해 많다고 보기도 어려운 돈이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이후 휴직을 해야 하는 직장인, 방학을 맞아 소일거리를 찾는 대학생들이 배달업에 많이 뛰어들었다고 한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황모(33)씨는 회사 사정으로 급여의 60%만 받는 유급 휴직 중 배달에 뛰어들었다. 그는 "최근 일주일에 45만원을 벌었다"며 "복직 전까지 배달 알바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은평구 직장인 김모(31)씨는 아예 '투잡러'로 변신했다. 매일 퇴근 후 배달 알바를 뛰는 그는 하루 7건, 4만원 안팎의 수입을 올리는데 용돈벌이로 이것만큼 쏠쏠한 게 없다고 했다. 김씨는 "여자라 배달이 힘들 줄 알았는데, 도보로 갈 수 있는 집 근처 배달만 받아서 하니 할 만하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 덕분에 배달은 늘었지만 어쩌다 자전거ㆍ오토바이 핸들을 잡게 된 신입 라이더들에게 봄날이 찾아오지도 않았다.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아 채용하는 회사가 없어 다들 라이더의 길을 택하게 됐지만, 항상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한 일이고 노력에 비해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분식집 앞에서 음식이 나오길 함께 기다리던 한 '라이더 선배님'도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택하게 됐다고 한다. 취업 준비생인 그는 부모에게 용돈 받는 게 눈치가 보여 한 달 전부터 알바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낮엔 독서실에 가고, 밤엔 서너 시간 배달을 한다는 그는 "공채 시즌이 시작됐지만 서류 합격도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새 양복을 입고 새내기 직장인으로 회사에 출근해야 할 젊은이들은 야광조끼를 걸친 채 시급 1만원 안팎의 돈을 벌려고 여름밤을 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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