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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서 2인자 오른 스가, 아베와 손잡고 '차기 총리'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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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서 2인자 오른 스가, 아베와 손잡고 '차기 총리' 노린다

입력
2020.09.03 07:00
수정
2020.09.10 00:45
0 0

日 세습 정치인들 속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딸기 농가 장남으로 상경 후 박스공장 취업
납치문제 앞장선 아베 보며 "총리로 세워야"
장기정권 1등 공신...'아베 상왕정치' 우려도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2일 도쿄 지요다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2일 도쿄 지요다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일본 정치권에선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3반(三バン)'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일본어로 발음이 '반'으로 끝나는 '지반ㆍ간판ㆍ가방'을 이르는 것으로 △지역 내 지지조직과 기반 △학력ㆍ외모 등을 앞세운 지명도 △선거자금을 비유한 표현이다. 일본 국회에 선대로부터 이 같은 유리한 조건을 물려 받은 '도련님'으로 불리는 세습 의원들이 많은 이유다.

2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에 해당하는 요소가 전혀 없는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물론 경쟁자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모두 세습 정치인이다. 선친의 후광과 파벌이 없는 그가 총리에 오를 경우 일본 정치사에 이례적인 기록을 남기는 셈이다.

주경야독ㆍ의원 비서 거쳐 정계 입문

그는 1948년 아키타현 딸기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키타현은 2018년 기준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지방자치단체) 중 1인당 소득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그의 중학교 동창 120명 중 30명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고도성장기 당시에도 벽촌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야간열차를 타고 상경한 그는 골판지 박스 공장과 쓰키지시장 등에서 일하다 호세이대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상경한 지 2년 만이었다. 호세이대를 선택한 이유는 사립대 중 등록금이 가장 싼 학교였기 때문이다. 입학 후에도 경비원과 카레식당 등에서 일하면서 주경야독했고 졸업 후 건설 설비회사에 취직했다.

정치에 뜻을 품고 회사를 그만 둔 그는 가나가와현을 지역구로 둔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 중의원 의원의 비서로 취직한다. 11년 간 비서생활을 거쳐 1987년 요코하마 시의원으로서 첫 선출직에 진출했고 1996년 가나가와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중앙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가나가와현 출신이 아니다'는 상대 후보의 공격을 받자, 오히려 명함에 '아키타현 출신'이라고 밝히며 선거전에 임했다. 이에 지역구 내 아키타현을 포함한 도후쿠지방 출신 유권자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내리 8선을 했다.

납치문제로 가까워진 아베와의 인연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생존자 오쿠도 유키코(왼쪽)와 하스이케 가오루 부부가 지난 2002년 10월 15일 일본 전세기 편으로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감격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생존자 오쿠도 유키코(왼쪽)와 하스이케 가오루 부부가 지난 2002년 10월 15일 일본 전세기 편으로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감격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정치적 배경이 정반대인 아베 총리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납치문제였다. 2002년 당시 관방부(副)장관이었던 아베 총리는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의 만경봉호 입항 금지를 위한 항만법 제정을 추진했고, 스가는 아베의 요청으로 이를 도왔다. 스가 장관은 2013년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국가관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이런 사람을 언젠가 총리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당시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북 직후였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면서 일본에선 '반북 여론'이 급속히 타올랐다. 관방부장관으로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동행한 아베 총리는 국내로 돌아와 납치문제를 활용해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고이즈미 총리의 후계자가 되는 데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됐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28일 사의를 밝히며 임기 중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개헌보다 납치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한 배경이다. 납치문제 담당장관을 겸임한 스가 장관도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 활로를 개척하겠다"며 아베 총리의 대북정책 계승을 강조했다.

정보ㆍ인사권 쥐고 관저주도 이끌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해 4월 도쿄 총리관저에서 새 연호인 '레이와'를 발표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레이와 아저씨'라는 애칭이 생기며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도쿄=AP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해 4월 도쿄 총리관저에서 새 연호인 '레이와'를 발표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레이와 아저씨'라는 애칭이 생기며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1차 정권 때인 2006년 9월 당시 4선의 스가를 총무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각료들의 잇단 스캔들과 참의원 선거 참패 후 총리의 지병 악화가 겹쳐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아베 총리에게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설 것을 설득한 이가 스가였다. 아베 총리는 스가의 도움으로 2012년 9월 당 총재로 선출된 뒤 같은 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이끌어 총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관방장관으로 임명된 그는 지난 7년 8개월 동안 정권의 위기 관리를 담당해왔다. 지병 재발로 두 번째 중도 사퇴한 아베 총리의 구원투수로 나선 배경이다. 그 역시 아베 장기정권에서 발생한 폐해들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향후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한계도 명확하다. 벌써부터 아베 총리가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왕(上王)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2014년 내각인사국 설치로 정보와 인사를 손에 쥐고 관료집단을 장악하면서 관저주도 정치를 이끌었다. 정치인의 눈치만 보는 관료들의 손타쿠(忖度ㆍ윗 사람의 의중을 헤아려 행동함) 문화가 만연해졌고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당시 재무성의 공문서 조작은 대표적 사례다.

언론에 대한 고압적 태도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2017년 6월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논란과 관련해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 도쿄신문 기자가 40분간 23차례나 질문을 하자, 그는 도쿄신문에 공식 항의한 데 이어 관저 출입기자단에도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비판받았다. 이는 영화 '신문기자'의 모티브가 됐다.

'정부의 입'... 한일관계 악화 속 강경 대응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지난 5월 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퇴장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지난 5월 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퇴장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으로서 그는 한일갈등 국면에서 한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양국 간 최대현안인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대해 "명확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밝혔고,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현금화) 가능성에도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계속 의연하게 대응하겠다"며 추가 보복 가능성도 시사했다. 2014년 1월 중국 하얼빈에 안중근기념관이 개관했을 때엔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한 테러리스트"라고 밝힌 바 있다.

스가 장관은 아베 총리처럼 뚜렷한 이데올로기 색채를 강조하기 보다 현실주의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주변국과의 외교에서도 온건파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가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때 "경제 재생이 우선"이라며 반대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당시 그가 '양국간 인적 교류와 경제 교류에 결정적 영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찬성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고 한다. 더욱이 아베 정권에서 외교는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이에 그가 차기 총리에 오르더라도 1년이란 임기 동안 아베 노선 계승이란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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