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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끝’만 남기고 떠난 아베

입력
2020.09.0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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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내내 한국 때리기와 우경화 외길
위안부에 털끝만큼도 사죄 의향 없어
양국 국교 수립 이래? ‘최악 총리’ 평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아베 일본 총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중도 퇴진이 파탄지경에 놓인 한일 관계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집권 내내 한국 때리기와 우경화 외길을 달려온 아베 총리의 사임이 거의 단교 수준인 양국 관계에 숨통을 트여 줄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세 번째 연임 중인 아베 총리의 임기는 원래 내년 9월까지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지병을 이유로 지난달 28일 전격 사임을 선언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 헌법 개정 등을 해결하지 못해 장(腸)이 끊어지는 느낌” 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7년 8개월간 독주해온 아베 정권에 대한 평가 작업이 안팎에서 무성하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아베의 사임 발표 다음 날 “일본 차기 총리는 한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뼈 있는 주문을 남겼다. 아베는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로 이름을 남기겠지만, 한일 관계에선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의 총리로 각인될 게 분명하다.

그의 두 번째 집권기인 2012년 12월 이후 한일 관계는 갈등과 충돌, 그리고 굴종 강요로 점철됐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식민 지배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 간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고위 각료들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마저 부정하는 망발을 경쟁하듯 쏟아냈다.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 편지를 보낼 의향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이 뼈아팠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명박 정권 때 주한 일본대사를 지낸 무토 마사토시의 변신이다. 그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 이라는 책을 펴내는 등 혐한 인사로 돌변해, 연일 한국을 조롱하고 있다. 극우적인 역사관에 매몰된 아베의 뒷배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블랙 코미디다. 아베 정권은 급기야 박근혜 정부와 밀실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발표해 한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이 대책을 가져오라”며 적반하장이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는 무리수를 둬, 반일 감정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아베는 과연 한국을 온전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아베의 본심은 한국을 여전히 식민지로 여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외교적 무례와 결례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남관표 주일대사가 당시 고노 외상에게 수출 규제 부당성에 대해 항의하자, 그는 남 대사의 발언을 중간에 끊고 “극히 무례하다”며 낯빛을 달리했다.

도일(渡日)한 한국 측 실무대표를 맞이한 자리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한국 측은 정장 차림인데 반해, 일본 측은 반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도 매지 않고 마주 앉아 상대를 무시하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정상국가 의전으로는 보기 어려운 상식 이하의 장면이다. 일본 정계와 오랜 기간 소통해 왔다는 국회의원들도 수모를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통’을 자처한 여야 의원 10명은 무역 보복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도쿄로 날아갔으나 문전 박대를 당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아베의 중도 퇴진은 역사의 큰 흐름으로 봐선 사필귀정이다. 하지만 누가 차기 총리 자리에 오르든 한국 때리기와 혐한 분위기에 편승한다면 한일 관계에 미래는 없다. 우리 정부도 과거사 문제와 현실을 분리하는 ‘투트랙’ 대일 관계의 기본 원칙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최형철 에디터 겸 논설위원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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