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①바이러스는 사람 간 접촉으로 전파된다. ②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지금은, 모이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역이다.
부인할 수 없는 이 과학적 사실을 무시한 일부 종교인들 탓에 코로나 방역이 다시 위기를 맞았다. 이미 1,000명 넘는 관련 확진자를 낸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는 “예배에 참여하면 성령의 불이 떨어져 걸렸던 병도 낫는다”는 근거 없는 말로 집회 참가를 독려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마스크를 꺼냈지만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돼 과학(의학)의 신세를 지고 말았다. 인천의 한 목사도 설교에서 코로나 사망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지만 확진자가 됐다.
이런 현상은 몇몇 목사와 교회의 문제라 하기도 어렵다. 자영업자와 직장인은 생업까지 멈춰가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했지만, 현장예배를 강행하는 교회가 잇따르며 교회발 집단감염은 멈추지 않는다. 자명한 과학원칙마저 거부하며 궤변과 기행을 일삼는 종교인의 퇴행 탓에, 전엔 과격해 보였던 리처드 도킨스의 비판(“종교는 정신적 바이러스”)에 수긍이 가려 하는 요즘이다.
물론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대부분 교회는 '코로나의 온상'이라는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왜 다른 종교시설에선 집단감염 사례가 거의 없는지 △ ‘일부 목사’의 퇴행이 계속됨에도 왜 교단의 자정이나 자성이 없느냐는, 그 거부할 수 없는 질문에 개신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교회의 이익과 목회자의 권세를 위해 과학을 고의로 배격하는 모습은, 과학을 탄압하다 급기야 몰락한 서양 중ㆍ근세 교회의 모습을 닮았다. 기독교는 한때 과학을 시녀(侍女)로 부리며 자연과 인간의 모든 문제를 지배했지만, 성장하는 과학이 내놓은 사실과 증거 앞에 힘을 잃고 사회의 한 ‘기능’ 내지 ‘문화현상’ 정도로 전락했다. 이제 종교는 스스로의 힘만으론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종교가 과학을 상대로 벌인 유구한 전쟁은 갈릴레이 종교재판을 교황이 사과(1992년 요한 바오로 2세)하며 종식됐지만, 한국 교회는 여전히 과학과 싸우는 중이다. 수백년 전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이미 유효한 방역수단으로 인정받은 격리(quarantine)의 유효성마저 거부당하는 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문맹률 낮고 충실한 의무교육이 이뤄지는 이 땅에서 이런 비과학이 반복될 때, 종교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커지고, 좁게는 개신교 넓게는 종교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두고서는 △대립설(충돌) △조화설(보완) △독립설(무관) 등 여러 견해가 존재하지만, 양자 모두 서로 침범할 수 없는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과학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사실 영역, 종교는 몰가치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사실에 의미나 윤리적 경중을 부여하는 가치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대미문의 역병 상황에서 과학과 종교는 서로에게 주어진 책무에 충실하며 각자 잘 하는 일을 떠맡는 것이 옳다. 과학은 바이러스와의 전투를 담당하고, 종교는 그 싸움에서 빚어지는 인간의 정신적 고립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지금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우리가 가족, 생계, 인간으로서의 가치 등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싸움이다. 이 전쟁에서 종교가 바이러스 대신 과학을 향해 칼을 겨눈다면, 존재 의의를 잃고 결국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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