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히포크라테스 선서 없애라” 황당 주장도
정부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집단휴진 사태가 길어지자 출구전략을 찾는 당정청의 행보가 분주해지고 있다. ‘원칙적 법 집행’을 강조하던 강한 어조를 거두고 의사 국가실기시험 시행 일주일 연기를 결정하는가 하면, 의료계를 향해 ‘모든 가능성을 연 대화’를 거듭 호소하는 신중한 표정이다. 의료 공백이 길어질수록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공백이 커지는 것은 물론, 책임론이 정부와 여당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이 분초를 다투는 와중에 여당 일부 인사들이 의료계를 향한 거친 말 폭탄을 쏟아내는 등 엇박자를 연출했다. 갈등 봉합에 앞장서야 할 상황에서 되레 상호 불신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단 한 명의 의료인도 처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번 사태로 (의료인들이) 절대 희생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법질서 수호의 기본적 책무가 있다”면서도 “유연한 자세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전공의(인턴ㆍ레지던트)뿐 아니라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정부 태도에 반발해 단체행동에 나선 마당에, 강경 대응 기조만 고수했다간 불신을 키운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가 업무개시명령에 따르지 않은 전공의 10명을 고발했을 때와 정부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의료계 의견 반영’을 약속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정애 신임 정책위의장은 1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국회에 논의기구를 당장 만들어 많은 것을 열어 놓고 논의할 것”이라며 “의료 전달 체계 등 20년간 쌓인 숙제를 다룰 테니 (의료진이) 참여해달라”고 했다. 이 같은 제안을 하다 울먹인 한 정책위의장은 “국회는 열려 있다. 언제든 연락을 주시면 뛰어가도록 하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협의 기구를 통한 정책 추진을 약속한 만큼 의료계는 정부를 믿고 현장으로 복귀해 달라”며 출구전략에 힘을 보탰다.
한 정책위의장은 1일 오후 국회에서 의료계의 입장을 듣기 위해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한 정책위의장은 면담 직후 취재진과 만나 "공공의대 등 쟁점에 대해 완전하게 제로의 상태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고, 최 회장은 이런 뜻을 의료계에 전하고 이 상황을 책임지고 정리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여당 곳곳에서는 ‘의료진의 무책임’을 질타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지난달 31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최대집 회장을 “제2의 전광훈”, “극우난동꾼”이라고 불렀다. 김 의원은 “일방적 주장으로 의료 거부를 선동하는 사람이 의료계를 망치고 있다”며 의료진을 자극했다.
1일 예결위에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까지 도마에 올랐다. 허종식 민주당 의원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향한 질의에서 돌연 “어차피 지키지도 않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대학병원에 권고해 다 폐지시키면 어떻겠냐”고 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료인들이 추구하는 직업 윤리일 뿐 당국의 폐지 권고 사항이 아니다. 허 의원은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국립대 병원의 지원 예산을 삭감하자”거나 “수천억원 국민 세금을 퍼주는데 고통으로 되갚냐”는 발언도 이어갔다. 이에 유 부총리는 “모든 의료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국립대 병원이 우리 의료 발전과 연구 인력 양성, 서비스 질 개선 등을 위해 역할하고 있다”고 수습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여권의 메시지가 강경한 것은 의료진 집단 행동에 법적 근거가 희박하며, 여론 전반의 지지도 미약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전임의까지 들고 나선 단체행동 전체를 몰이해와 선동의 결과로 치부하는 태도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의료계 난타’는 야당의 타깃이 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권의 태도를 두고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19 1차 위기 극복에 가장 헌신한 의료종사자들이 마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도덕적 프레임을 씌우려고 한다”며 “결자해지 차원으로 나서야지 책임을 의사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비겁한 책임전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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