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첫째,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최소 두 사람 이상 나올 것. 둘째,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셋째, 그 이야깃거리는 남자에 관한 것이 아닐 것.
미국의 만화가 앨리스 벡델이 1985년 고안한 '벡델 테스트'다. 영화 속 남성 편향을 계량화하는 데 쓰인다. 누군가는 되물을 지 모르겠다.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차고 넘치는 이 세상에서 이게 테스트이긴 하냐고.
톰 도너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가 다시 불려나온 이유다. 이 영화는 원래 지난해 10월 국내 개봉했다. 그런데 지난달 열린 제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여, 성(聲)' 섹션에서 다시 상영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큐멘터리 전용 VOD 서비스 '디박스'에서 볼 수 있다. '우먼 인 할리우드'가 다시 불려나온 건 이 영화가 벡델 테스트에 적합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여서다.
영화는 배우, 감독, 제작자 등 할리우드에 일하는 여성 96명의 목소리로 96분을 꽉 채운다. 메릴 스트립, 산드라 오, 나탈리 포트만, 케이트 블란쳇, 클로이 모레츠 등 알만한 이들은 모두 나와 말을 보탠다.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이 이 산업의 핵심"이라는, 할리우드에서 용케 살아남은 자들이다.
클로이 모레츠는 "그냥 배우가 아니라, 여배우"란 건 열여섯 살 때 깨우쳤다. 제작자가 가슴이 더 커보이도록 브래지어에 패드를 넣으라 요구해서다. 더 무서운 건 그 때문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성장할 기회를 뺏길 지도 모른다는 점. "어릴 때부터 자주 객체가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 세계관을 갖는 것과는 정반대 개념이죠. 내가 원하는 건 중요치 않았어요. 그런 관점 변화가 어릴 때 일어났으면 참 좋았겠다 싶어요."(나탈리 포트만)
한편에선 싸움을 걸고 나섰다. '델마와 루이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지나 데이비스는 미디어젠더연구소를 만들어 어떻게 영화계가 여성을 배제하는지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이에 따르면 2018년 미국에서 흥행한 영화 100편 중 85%를 남성 작가가 썼다. 1990~2005년 미국 내 흥행작 101편 중 대사가 있는 인물의 72%는 남성이다. 애초 여성 감독과 작가가 드물다보니 여성 캐릭터 자체가 등장하기 어렵다. 기회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호평을 받았던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9년 만에 차기작을 내면서 "할리우드에 성차별이 없다고 생각한 내가 순진했다"고 개탄한다. 여성 중심 영화는, 호평받아도 우연으로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여성은 6세부터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기 시작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온다. 미디어를 통해 여섯 살부터 남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법은 배운다는 얘기다.
절망의 시작도 미디어라면, 희망의 시작도 미디어다. 이른바 'CSI 효과'다. CSI 시리즈에 여성 법의학자가 등장하자, 미국 법의학계에 여성들 진출이 크게 늘었다. 코로나19사태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이 주목받으면서, 우리나라 여자 아이들도 좀 더 다른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듯.
"여자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가 더 많아져야 해요. 문을 열어야 해요. 우린 안으로 들어가고 싶거든요."(메릴 스트립) 이 작품의 원제는 'This Changes Everything'.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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