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으로 등록, 방역강화에 문 닫는 곳 속출
'장시간 믿고 맡길 수 있었는데, 그만두지도 못해'
학원은 돌봄 지원 대상 아니어서 사각지대로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A(37)씨는 수차례 고민 끝에 올해 초 자녀(6)를 일명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영유아영어학원에 입학시켰다. 맞벌이인데다, 직업 특성상 야근도 잦아 운영 시간이 긴 기관을 찾은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A씨는 “방과후 프로그램과 시설이 좋고, 학부모 참여수업도 적어 비싼 학비를 감수하기로 했다. 일반 유치원 하원 후 퇴근까지 학원을 ‘뺑뺑이’ 돌리는 수고 비용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면서 A씨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지난 19일부터 수도권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되면서 300인 이상 학원이 문을 닫아 A씨 자녀가 다니는 영어유치원도 영업을 중지하게 된 것. 영어유치원은 돌봄신청이 불가능해 A씨는 급히 친정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긴 시간 아이를 ‘믿고 맡기려고’ 영어유치원을 선택했는데, 역설적이게 코로나로 ‘믿고 맡길 수 없게’ 됐다”며 “영어유치원 이용하는 학부모 다수가 그만두고 싶어도 일반 유치원 모집이 3월에 끝나 보낼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되면서 영어유치원이 ‘돌봄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영어유치원은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으로 분류돼 학원법의 적용을 받으면서 이 시설에서 돌봄서비스를 하는 것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19일 수도권 2단계 거리두기 시행 시 300인 이상 영어유치원이, 31일부터는 모든 영어유치원이 이용금지 시설이 됐다. 1일 교육부 관계자는 “학원협회 등에서 (영어유치원의) 돌봄문제를 제기했지만 학원법 적용을 받는 곳이라 닫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A씨의 사례처럼 휴원을 하면 그나마 학비라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원격수업을 실시하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서울 송파구 B(37)씨가 이런 경우다. 역시 맞벌이 때문에 자녀(6)를 ‘장시간 믿고 맡길’ 기관으로 영어유치원을 골랐고, 하원 후부터 B씨 퇴근 전까지 친정 부모가 자녀를 각종 학원에 보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꼼꼼한 교육과 막대한 영어숙제로 유명한 이 영어유치원은 지난 3월 중순 교육부의 ‘유치원 등원중지’ 권고에 영향을 받지 않고 3월 중순부터 개학했다. 그러나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되면서 모든 학원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원격수업을 시작한다고 통보했다. 등원 시간 내내 영어로 진행되는 원격수업을 친정 부모가 보조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각 가정마다 이런 사례가 많은 탓에 오전 9시, 12명이 컴퓨터에 접속해 영어수업을 시작하면 오후 2시 무렵 화면에 보이는 건 5명 남짓에 불과했다. B씨가 직장에 있는 동안 종종 ‘어머니, 기현이(가명)가 화면에서 사라졌어요’ 같은 담임강사 문자가 휴대전화에 찍혔다. 이 영어유치원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놀이터 등 야외에서 노는 시간이 더 늘었다고 불안해했다. B씨는 “원격수업 전환 이후 재택근무 중인 남편이 주로 아이를 돌보고 있다”면서 “학비 감액정책 필요하다”고 말했다.
돌봄 사각지대인 영어유치원이 많은데도 ‘고비용’이란 인식 때문에 영어유치원 이용 학부모들은 문제제기조차 못한 채 냉가슴을 앓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수도권에 있는 유아대상 반일제(1일 4시간 이상) 영어학원은 올해 기준 438개소(서울 218개, 경기 193개, 인천 27개)에 이른다. 지난달 31일 기준 등원을 중지한 수도권 유치원수 2,762개(서울 642개, 경기 1,815개, 인천 305개)의 약 16%에 이르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다.
또 다른 교육부 관계자는 “유치원이 아닌 영유아 영어학원을 보내는 것은 학부모의 선택”이라며 “학원은 (돌봄)정책 지원 대상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이 부분까지 정책화하기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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