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아이가 장염에 걸려, 평소 다니던 동네 소아과 의원에 문의차 전화를 걸었다. 평일은 물론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거의 휴진 없이 진료를 보는 곳이라 당연히 진료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수 차례 전화를 해도 응답이 없었다. 갑자기 어느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하나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의사단체와 정부의 의견이 대립해 의사들이 파업에 나선다는 뉴스는 접하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고 보니 큰 일로 다가왔다.
사실 의사들의 파업 소식과 정부와의 충돌 등을 전하는 기사를 파편처럼 접할 때는 그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양측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해 들었을 뿐, 그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마주하는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우리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보니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찾아보게 됐다. 온갖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근거 없는 주장은 걷어내고 국민 입장에서 본질만을 살펴보려고 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사들 주장은 일부분 타당해 보인다. 의사들의 파업 대의 명분은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잘못 끼운 단추는 우리나라 의료체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의사들의 절박함과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한 정부의 성급함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하지만 길어지고 강경해지는 의사 파업은 점차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는 이미 “코로나19 상황이 끝날 때까지 관련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상황이 끝난 후 사회적 협의체를 꾸려 정책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들의 주장을 이해하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눈높이도 그 수준이다. 하지만 의사단체들은 정부가 모든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더 강도 높은 파업에 나서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국민이 최고조의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이 시기에 대규모 의료 공백을 얘기하는 의사단체의 주장은 위협적이다.
이미 곳곳에서 위급한 환자들이 파업의 영향으로 죽어가고 있다. 응급환자들이 의사들의 외면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고, 한시가 급한 환자들의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환자단체들은 “집단휴진 장기화로 암·심장병 등 중증질환 환자들의 수술과 항암치료가 연기되고 입원 중인 환자들도 퇴원 조치를 당했다”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의사의 첫 번째 의무이고 이를 위해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고 의사들의 복귀를 촉구했다. 이쯤 되니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파업’이라는 주장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의사는 최우선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고결한 의무를 갖고 있다. 국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그 동안 의사들 파업을 감내해준 이유이다. 여론의 신뢰, 지지, 명분을 잃은 집단 행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린 이미 많은 사례를 봐왔다. 의사들의 파업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자’한 본래 목적을 부디 변함없이 달성하길 기원한다.
강희경 영상사업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