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산업계로 번지는 코로나19 재확산 충격파
"6ㆍ25 전쟁터에서도 식당 문은 열었다던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하다."
한숨부터 내쉬었다. 가뜩이나 파리만 날리는 마당에, 영업시간마저 강제로 줄여야 하는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25년째 식당을 운영해 온 A(56)씨는 "점심 장사만 하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방역 때문에 가게 문을 닫게 했으면 세제 혜택이든 선별 재난지원금이든 나라에서 뭔가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충격파가 수면 위로 치솟고 있다. 서민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은 이미 붕괴 상태인 데다, 여행이나 항공, 호텔 등을 포함한 취약 업종도 고사 위기다. 특히 한국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해온 자영업 상황은 심각하다. 내달 6일까지 수도권 내 일반음식점에 대해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실내 영업을 금지시킨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지침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은 '패닉' 상태다. 정황은 통계치에서도 확인된다.
30일 전국 60여만 소상공인 카드 결제 정보를 관리하는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조치가 서울ㆍ경기에서 전국으로 확대된 8월 셋째 주(17~23일) 전국 소상공인 사업장 매출 지수가 0.85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매출의 85%에 그쳤다는 의미다. 코로나19 1차 확산이 정점을 이뤘던 지난 4월 둘째 주(6~12일ㆍ0.84) 수준으로 자영업자 매출이 다시 급감했단 얘기다. 내수 침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중고를 겪던 자영업자들에게 코로나19 장기화는 치명타였던 셈이다. 여기에 사상 최장 기간 이어진 장마 탓에 휴가철 특수마저 사라졌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인도 요리 음식점을 하는 이모(38)씨는 "3, 4월 코로나19 1차 확산 때엔 매상이 3분의 1 토막 났는데 그나마 그때가 나았다"며 "매장 직원을 5명에서 2명으로 줄였는데도 다들 할 일이 없다"고 푸념했다. 이어 "지금은 손님이 아예 없다"며 "이대로 가면 문 닫는 건 시간문제"라고 걱정했다.
서울 강남이나 명동, 홍대 등 주요 상권에서도 '임대' 팻말을 내건 점포는 쉽게 눈에 띈다. 이런 상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올해 1월 홍대 인근에서 식당을 개업한 이모(39)씨는 낮엔 커피나 디저트를, 저녁엔 주점으로 바꿔 가면서 버텨 봤지만 최근 장사를 접었다. 이씨는 "3월에 가게를 내놨는데 빠지질 않아 월세가 계속 나가 집 보증금까지 빼서 막다가 겨우 정리했다"며 "이미 날린 돈만 1억5,000만원이 넘는다"고 탄식했다.
코로나19에 허약한 업종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다. 실제 항공이나 여행, 호텔업계에서 무급휴직이나 희망퇴직 시행에 들어간 기업은 비일비재하다. 제주항공과 인수합병(M&A) 무산으로 법정관리를 앞둔 이스타항공은 얼마 전 700여명의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키로 결정했다. 상반기에 500여명의 인원을 감축한 이스타항공이 이번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경우 직원 수는 지난해 4분의 1 수준인 400여명으로 줄어든다. 다른 저비용항공사(LCC)들도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끊기는 11월 이후 무급휴직이나 대규모 정리해고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여행업계도 벼랑 끝에 서 있다. 하나투어는 지난 6월부터 창사 이래 처음 직원의 80% 이상이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모두투어는 지난달까지 실시해 온 유급휴직을 이달부터 무급휴직으로 전환했다.
국내 대형 여행사의 해외여행팀에서 근무 중인 B(40)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3월부터 반년 가까이 휴직 중이지만 복귀에 대한 기약이 없다. 세 살배기 아들을 키우면서 워킹맘으로 일해 온 B씨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단 1명의 구조조정 없이 살아남았던 회사였다는 말을 선배들에게 들어 왔다"면서 "남편 월급만으론 살림살이가 빠듯한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구조조정을 하게 될 경우 '워킹맘'부터 정리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불안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항공ㆍ여행업의 충격은 호텔로 이어졌다. 호텔롯데는 지난 6월에 만 58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체계를 개편하면서 명예퇴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호텔롯데의 명예퇴직 시행은 2004년 이후 16년 만이다.
유통업계에선 롯데마트가 희망 직원을 대상으로 지난 7월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롯데마트의 무급휴직은 1998년 매장을 연 후 처음이다. 롯데면세점과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3월부터 이미 각각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신청받고 있다.
CJ 계열사 중에선 코로나19로 극장 손님이 급감한 CGV가 창사 이래 처음 희망퇴직을 공식화했다. 근속 10년 이상 직원이 대상이라 규모도 크다. 나머지 직원들은 주 3일 근무 체제로 전환했고 희망자에 한해 무급휴직도 진행 중이다. 상반기 비상경영으로 임원들이 임금을 반납해 왔던 이랜드리테일은 상반기 매출이 두 자릿수 역성장을 기록하자 창사 42년 만에 처음 관리직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를 시행한다. 한화무역은 근속 1년 이상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공채가 가장 최근 입사자라 사실상 250명 모든 직원이 희망퇴직 대상이다.
한편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이달 23일까지 유급휴업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기 위해 고용유지조치계획을 신고한 사업장은 7만7,453곳으로 지난해(1,514건)의 51배에 달했다. 정부가 최근 여행업ㆍ항공업 등 8개 특별고용지원업종에 한해 지원기간을 60일 연장해 급한 불은 껐지만 다음 달부터 순차적으로 지원이 끊기는 영세 중소기업에서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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