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다소 숨통” 기대 속?
후임 총리 누가 되든 입장 불변 전망?
靑 “빠른 쾌유 기원” 작별인사
"침략의 정의는 학계적에서나 국제사회에서 정해지지 않았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2013년 4월 2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은 답변을 내놨다. "일본이 언제까지 한국에 사과해야 하느냐"는 일본 극우 세력의 과거사 인식을 그대로 담은 발언이었다. 이는 장차 7년에 걸친 아베 총리 집권 기간 동안 내리막을 걷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한일 갈등 주인공 격이었던 아베 총리가 최장수(2799일) 총리 기록을 남기고 28일 사퇴를 선언했다. 청와대는 강민석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오랫동안 한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 온 아베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임 발표를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아베 총리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고 작별 인사를 전했다.
한일 간 숨통 기대감
아베 총리 재임 기간 한일 과거사 갈등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를 둘러싸고 증폭됐다. 2013년 취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정상회담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고, 실제 두 정상은 2년여 간 마주하지 않았다. 2013년 9월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리셉션장에서 나란히 앉았지만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장면은 냉랭했던 당시 양국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15년 12월 위안부합의가 도출됐지만, 더 큰 악재로 작용했다. 피해자 의견이 배제됐다는 국내 비판 여론에 거셌고, 결국 2017년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이를 사문화시켰다. 아베 총리는 "약속을 지키라"며 반발했고, 뒤이어 일제 강제동원 문제가 불거지자, 한국 기업에 대한 수출 규제라는 초강수로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과거사 문제에서 초강경으로 일관했던 아베 총리가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일단 한일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아베의 한국에 대한 정책에는 개인이 갖고 있는 감정도 실려 있었다"면서 "이같은 지도자가 교체되는 것만으로도 양국관계엔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임 총리 누가오든"...과거사 인식 차 여전할 것
한미일 3자 간 구도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다소 키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미일 간 '밀월 시대'를 연 아베 총리의 퇴장으로 미일관계는 다소 이완될 수 있다"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미국에 보다 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틈을 노려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총리 한 사람의 교체로 한일 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현재로선 더 많다. 새 내각이 들어서도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이 바뀌진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주일 한국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차관은 "강제동원이 현재 한일갈등의 핵심 원인인데, 총리가 바뀌었다고 당장 자민당 정권이 유화적 태도로 돌아서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 교수 역시 "후임 총리가 누가 오든지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 모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일관계 개선이 후임 총리에게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이란 지적 마저 나온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아베 임기 동안 한국과의 타협을 원하지 않는 일본 국민 여론은 더욱 커진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후임 총리로 누가 오든 일본 내 반한(反韓)감정을 거스르면서까지 한국과 외교적 타협을 시도하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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