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주당 대표에 오른 것은 당내 주류인 친문재인계와 86그룹 입장에서 보면 일대 사건이다. ‘정치적 반전 드라마’에 가깝다. 신문기자로 시작해 4선 국회의원과 전남도지사를 거쳐 국무총리를 딛고 176석 거대 여당의 선장이 된 이 대표. 29일 당 대표 당선으로 그가 '대망론'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1952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공부했다. 동아일보 동교동계 출입기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들어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했다. 김 전 대통령이 승용차에 오르기도 전에 이 대표가 먼저 타 있곤 했다는 장면은 이 대표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단단한 신임을 상징한다.
이 대표는 여의도에서 ‘선거 선수’로 통한다. 네번의 총선과 전남도지사 선거 등 다섯번의 공직 선거서 내리 이겼다. 이번 당 대표 선거를 포함하면 6전 6승의 기록이다.
이 대표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이 동교동계와 결별하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민주당에 잔류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선택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고, 노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등 노 전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2008년 다시 합당한 뒤로도 이 대표와 동교동계는 비주류에 머물렀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낙연 팬덤이 없다’는 질문에 “근본적으로는 제가 열린우리당에 동참하지 않았던 소수파 출신이라는 한계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에 당선돼 여의도를 멀리 떠났다. 이 대표의 '정치적 미래'를 기대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이 대표를 국무총리로 깜짝 발탁한 것이 이 대표가 쓴 반전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이 대표는 2017년 대선 당시 문 대통령에게 미지근했던 호남 민심을 달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16~18대 총선에서 전남에서 내리 당선됐다. 21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 출마,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이낙연 대세론'에 쐐기를 박았다. 최근 차기 대선구자 여론조사에선 이재명 경기지사의 거침 없는 추격을 받는 중이다.
문 대통령 발탁으로 '중앙 정치인' 발돋음
이 대표는 총리로서 안정적 국정 운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을 아프게 질책해 ‘정부 군기 반장’으로 불렸다. '이낙연'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키운 건 국회 대정부질문이었다. 정부를 대표하는 답변자로 나서서 절제된 언어를 쓰면서도 야당 공세에 능수능란하게 대응했다. 간결하고 시원한 답변으로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기자 시절에도 '틀린 팩트'를 용납하지 않는 엄격함으로 유명했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 문 대통령과 상당한 신임을 쌓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총리 시절 문 대통령과 주례회동을 하고 때로 밤에 따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 대표가 총리 시절 해외 출장을 갈 때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를 내주기도 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이 대표를 '확실한 우리 사람'으로 인정하는지에 대해선 평가가 분분하다.
이 대표는 이날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국난을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국민의 힘을 모아야 하고 그 일에 여야와 진영이 따로 있을 수 없다”며 “민주당도 통합의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햇다. 치열하게 자기 길을 개척해온 그가 리더십을 발휘해 차기 대선으로 가는 길을 넓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