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국가보안법에 감금된 여성들, 그 목소리 그대로 담았죠"

알림

"국가보안법에 감금된 여성들, 그 목소리 그대로 담았죠"

입력
2020.08.28 15:53
수정
2020.08.28 18:18
21면
0 0

남영동 대공분실에 갇혔던 여성 11명 경험
수십년만에 기록해? 구술로 생생하게 전달

국가보안법 역사를 기록한 전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기획한 권은비 예술감독(왼쪽)과 강곤 작가가 지난 4일 전시가 열리는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 기자

국가보안법 역사를 기록한 전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기획한 권은비 예술감독(왼쪽)과 강곤 작가가 지난 4일 전시가 열리는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서울 용산구 갈월동 98-8번지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 주소는 갈월동이지만, 남영역 옆에 위치한 탓에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한 곳이자, 민주화 운동가 고 김근태 전 의원이 전기고문을 당했던 자리다.

그러나 '박종철'과 '김근태'라는 거대한 이름들에 가려져 왔던 여성 민주화운동가들의 한숨과 상처도 이 곳에는 고스란히 배여있다. 여태껏 주목 받지 못했던 여성 민주화운동가들의 발자취는 이달 25일부터 시작된 구술 전시회를 통해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됐다.

국가보안법 역사를 기록한 전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기획한 권은비 예술감독과 강곤 작가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보법 문제에서 하필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냐고 묻는다면, 여성들 역시 당시 상황을 알려줄 수 있는 뛰어난 발화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남성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알려졌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실상을, 이제 여성의 입을 통해 다른 각도에서 확인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다음달 26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올해로 제정 72주년을 맞는 국보법을 폐지하기 위한 목표로 기획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기념관이 잠정 휴관하는 바람에, 실제 전시는 민주인권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민주화 이후 수십년간 잊혀졌던 여성 피해자들은 이번 구술 전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강 작가는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에 수감되는 등 국보법 피해를 당했던 여성 11명을 직접 만나 그들의 증언을 구술 형태로 담았다. 구술자로 나선 이들 중에는 잊었던 고통을 떠올리느라 고생한 피해자가 있었고, 피해를 잊기 위해 숨어 살다가 다시금 용기를 낸 사람도 있었다. 강 작가는 이들의 사투리까지 왜곡 없이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국가보안법 역사를 기록한 전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기획한 권은비 예술감독(왼쪽)과 강곤 작가가 지난 4일 전시가 열리는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 기자

국가보안법 역사를 기록한 전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기획한 권은비 예술감독(왼쪽)과 강곤 작가가 지난 4일 전시가 열리는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배우한 기자

어렵게 채록한 구술은 지금 세대를 사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로 재현됐다. 배우 문소리, 영화감독 임순례, 소설가 정세랑 등이 낭독자로 나서 피해자 구술에 생동감을 줬다. 권 감독은 "당사자 목소리로 내용을 직접 들을 수도 있지만 내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가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전승과 연대'라는 의미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구술 낭독본을 직접 듣는 1부에 이어, 국보법 역사를 인포그래픽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2부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강 작가는 "국보법은 인기 없는 주제지만 모든 인권 문제와 맞닿아 있는 문제"라며 "전시를 통해 국보법을 전혀 모르던 사람도 알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 감독과 강 작가는 이번 전시 이후에도 국보법 피해를 조명하는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70년 국보법 역사 중 지금까지 드러난 것들은 빙산의 일각인 만큼, 아직 남은 목소리를 담고 싶어요." 권 감독과 강 작가는 눈을 반짝이며 포부를 말했다.

최은서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silver@hankookilbo.com으로 제보해주시면 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