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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천상륙작전’ 모티브 된 임병래 중위… 9월 호국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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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천상륙작전’ 모티브 된 임병래 중위… 9월 호국인물로

입력
2020.08.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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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성공 이끈 첩보부대 지휘
북한군에 포위되자 대원들 탈출시키고? 자결

전쟁기념관이 9월 호국인물로 선정한 임병래 해군 중위.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한 첩보부대를 이끌었다. 전쟁기념관 제공

전쟁기념관이 9월 호국인물로 선정한 임병래 해군 중위.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한 첩보부대를 이끌었다. 전쟁기념관 제공


전쟁기념관은 6ㆍ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한 첩보부대를 이끈 임병래 해군 중위를 9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1922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난 임 중위는 1950년 4월 20일 사관후보생 9기로 임관했다. 해군은 1950년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첩보수집부대를 편성했고, 임 중위를 포함한 정보장교 17명이 합류했다.

그해 8월 17일 부산에서 출발해 5일 뒤 인천 앞바다 영흥도에 상륙한 첩보부대는 3개조로 나뉘어 활동을 개시했다. 임 중위는 밤낮으로 영흥도와 인천을 오가며 첩보활동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인천에 남아있던 공작원들과 접선해 서울 지역까지 첩보영역을 확대했다.

9월 1일 맥아더사령부 정보부가 파견한 클라크 해군 대위의 첩보대가 영흥도에 도착하자, 첩보부대는 인천의 적 병력, 보급관계, 기뢰부설 현황, 상륙지점의 지형과 암벽의 높이 등 그간 수집한 정보를 미군 정보부로 전달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정보였다.

그러나 해군첩보대원들은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9월 14일 북한군에게 포위됐다. 임 중위는 홍시욱 이등병조와 함께 나머지 첩부대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고 기밀 유지를 위해 최후의 순간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2016년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제작됐다.

정부는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한 임 중위의 공적을 기려 1954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해군은 2013년 유도탄 고속함 10번함 함명을 임병래함으로 정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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