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는 보편가치를 공유해야 가능한 것
극우 극단주의는 정통보수와 병립 불가
의존형 정당체질 청산하고 정체성 분명히
극우는 기존 체제 수호를 명분으로 지독한 배타성, 나아가 폭력성까지 띠는 이념적 ‘경향’이다. 국수주의에다 인종적 민족적 차별성을 대놓고 드러내는 서구 극우 정당들이나 일본의 혐한 부류들에게서 보이는 그것이다. 자율 경쟁 책임 등 전통적인 보수 우파의 가치와는 별 상관이 없다.
전광훈 목사의 경우는 좀 다르다. 현 정권을 빨갱이로 규정짓고 독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점이 우측으로 보이게 할 뿐, 그 외의 일관성이나 논리를 찾기는 어렵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교주 같은 모습이 기이하게 겹치고, 정치적 야심가 같다가도 반사회적인 성차별·인격모독에 이르면 도무지 정체성을 종잡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극우라기도 뭣한 그냥 좌충우돌하는 극단주의자다. 더 솔직히는 사회적 주목에 연연하고, 그를 통해 명성과 부을 얻고싶어 하는 세속적 관심증 성향에 가까워 보인다.
정상적인 제도권 정당이라면 그는 끌어안아서도, 관심을 보여서도 안 될 존재였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숫자가 아쉬웠던 자유한국당은 오직 반문(反文) 접점 하나로 그를 덥석 물었다. 당 대표 등이 수차례 집회를 사실상 공동 주관하고 그를 구국의 동반자쯤으로 격상시켰다. 이른바 정통 보수 정당으로서의 이념과 정통성 체통마저 다 내던지면서 반문 호소의 설득력은 도리어 광장 안으로 축소됐다. 광장이 뜨거워질수록 길 건너는 썰렁해지는 법이다. 결국 미래통합당의 몰골은 더 누추해졌고 그게 4·15 괴멸의 주 요인이 됐다.
최근 8·15 광화문집회를 전후로 요동하는 여론이 시사하는 바도 정확히 같다. 집권세력의 독선과 오만, 정책 오류와 끝없는 책임 전가에 질려 가는 이들이 시선을 돌리려다가도 통합당에 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순간 고개를 젓게 되는 그 현상의 반복이다.
사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상대의 실패에만 기대 흠결 찾기로나 연명해온 통합당의 의존형 체질이다. 온 국민이 사투를 벌이는 이 전쟁 상황에도 “정부 잘못으로 광화문집회 전 코로나가 재창궐하기 시작했다”는 식의 주장 역시 이런 체질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 여부를 떠나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전 목사 등을 비호하는 모습으로나 비치기 십상인 걸 왜 모르는가. 거꾸로 그들의 무모한 행각을 앞장서 비판하고 나섰어야 옳았다.
가치가 맞지 않으면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니다. 일부가 뒤늦게 반성한들 통합당이 차제에 분명한 정체성을 세우고 독자적 콘텐츠 생산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앞으로도 ‘적의 적’과의 연대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세(勢)가 필요해지면 같은 잘못을 거듭할 위험성이 크다.
역대 정권의 집권기 패턴으로 보아 정부여당에는 더 나아질 기대를 하기 어렵다. 더구나 맹목적 지지 집단에 포획된 상태여서 운신의 폭 자체가 거의 없다. 그나마 변화의 여지는 통합당이 훨씬 더 크다는 말이다. 그래서 최근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행보는 통합당의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보수 정당의 금역(禁域)이었던 5·18 문제를 정면으로 끌어안고, 극우 극단 세력과의 단호한 결별을 선언하고, 차분하게 정부 정책의 문제를 지적(비난 아닌)하는 모습들이다. 윤희숙 의원에게서 잠깐 보였던 가능성의 불씨를 그 혼자 묵묵히 지펴내고 있는 느낌이다.
4·15총선 직후의 칼럼에서 통합당에 지켜야할 건 아무것도 없으니 다 버릴 것을 주문했다. 그 첫째가 극우 극단과의 결별, 의존형 체질의 청산이다. 합리 품격 책임의 정체성은 그 위에나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당장의 지지율 따위에 상관 말고 크고 길게 보기 바란다. 2년은 어떤 정치적 변화도 가능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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