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에 유치한 '녹색성장' 상징 국제기구
"유엔 녹색기후기금 내부 비위 만연"?
기금 측 "비위에 대응하고 있다" 반박
세계 최대 기후금융기관인 유엔 녹색기후기금(GCF) 내부에 성차별과 인종차별, 직장 내 괴롭힘 등 비위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소수가 조직 운영을 좌우하면서 내부 고발이 묵살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출범 10년도 안돼 회원국 간 의견 조율 실패와 리더십 부재로 부침을 겪고 있는 신생 국제기구가 또 한 ?번 고비를 맞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현지시간) 전ㆍ현직 직원 17명이 모인 자칭 '리그린 이니셔티브(Re-Green Initiativeㆍ재녹화 계획)'란 그룹의 내부 비위 폭로 서한을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들은 "직원이 약 330명 있는 GCF 본사 사무국에서 권력 남용과 성ㆍ인종차별, 괴롭힘, 부적절한 관계 등 비위 행위로 피해를 입었거나 이를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무국 임원진이 내부 고발을 묵살하고 있다"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소수의 이익 때문에 기금 임무가 위태로워졌다"고 비난했다.
GCF는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는 국제기구다. 2010년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설립을 결정한 후 2013년 본사 사무국이 우리나라 인천 송도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독일 등과의 경쟁 끝에 처음으로 국제기구 사무국을 국내에 유치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앞세운 '녹색성장'의 대표 성과물로 크게 홍보됐다.
FT에 따르면 GCF 내부 민원 건수는 2018년 21건에서 2019년 40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민원 중에선 직원 비위가 24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권력남용(8건)과 괴롭힘(6건), 성희롱(2건) 등의 순이었다. GCF는 "적절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고충처리 체계가 개선되면서 신고가 증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내부 고발자들은 독립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올해 GCF를 그만둔 한 직원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체계적"이라며 "특정 관리자들은 집요한 괴롭힘으로 악평이 나 있다"고 폭로했다.
본사 사무국의 위치가 조직 운영을 더 어렵게 한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GCF는 최소 61개국에서 온 20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한다. FT는 익명의 제보자를 인용해 "수도 서울이 아닌 송도라는 '고립된 위치'를 감안하면 이런 다양성 있는 조직을 관리하는 일이 큰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GCF 운영이 흔들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FT는 "이전에도 GCF가 이사회 의사 결정과 프로젝트 선정 관련 문제로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17년 파리기후협약 탈퇴 선언은 이 협약의 후속책 마련이 주업무인 GCF에게 큰 고비였다. 2018년에는 2차 재원 보충을 두고 회원국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사무총장이 중도사퇴하는 등 혼란이 컸다. 올해 3월에는 한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스위스 제네바로 옮겨 개최된 이사회 참석자 중 4명이 감염되고 1명이 사망하면서 전반적인 사기 저하도 심각하다고 FT는 전했다.
야닉 클레마렉 GCF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모든 형태의 차별과 괴롭힘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갖고 있다"면서 "조직이 성숙함에 따라 예방, 보고, 조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GCF는 현재까지 170억달러(약 20조1,700억원) 이상을 모금해 14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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