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맛? 5달러짜리 맛? ‘트럼프 와인’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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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맛? 5달러짜리 맛? ‘트럼프 와인’은 억울하다

입력
2020.08.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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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최근, 유머 게시판의 글인가 착각했을 만큼 재미있는 기사를 접했다. 2020년 8월 9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였다. 백악관의 한 참모가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실에 이런 내용을 문의했다고 한다. “큰바위얼굴이 조각된 러시모어 산에 다른 대통령 얼굴을 추가로 조각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합니까?”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기사가 나오자 백악관은 가짜 뉴스라면서 부인했다. 그러나 2018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인 크리스티 놈이 어느 언론과 한 인터뷰를 보면 이를 가짜 뉴스라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것도 사실이다. 주지사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와 만났을 때, 트럼프는 “러시모어 산에 내 얼굴이 새겨지는 것이 꿈이다”라고 그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농담으로 듣고 웃었지만 트럼프는 진지했다고 전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러시모어 산에는 미국의 정신적 지주라 할 만한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이들은 각각 미국의 건국, 팽창, 발전, 보존을 의미한다고 한다. 도대체 그러한 곳에 왜 트럼프는 자신의 얼굴을 조각하고 싶은 것일까.


2017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와인잔에 콜라를 채워 건배하고 있는 트럼프(위 사진) 대통령과 2019년 하노이북미정상회담에서 생수를 채운 와인잔을 앞에 둔 트럼프 대통령. 뉴시스ㆍ연합뉴스


와인 칼럼에 뜬금없이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한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한 와인 칼럼을 지난해에 준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9년 2월로,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을 즈음이다. 한반도 종전 선언을 기대하며 회담이 성공리에 마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글에 담았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그 이후 상황은 여의치 않았고, 결국 칼럼을 내보낼 수 없었다. 허나, 내친 김에 이번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레이디 가가, 제이 지, 비욘세,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 마돈나, 스팅, 아놀드 파머, 올리비아 뉴튼 존, 클리프 리처드, 사라 제시카 파커. 트럼프 대통령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들을 호명한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과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자 와인 애호가라는 점이다. 게다가 와이너리까지 소유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와인은 잘 모른다”라고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거니와, 2017년 한미정상회담 만찬에서는 와인잔에 ‘콜라’를 채워 건배를 했을 만큼 술을 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의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와인잔에 생수가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와이너리를 소유한 부자이기는 하지만 와인 애호가가 아님이 분명하다.

‘와인과 외교’의 저자 니시카와 메구미는 책에 이런 글을 썼다. “향연은 외교의 중요한 도구”이자 “형태를 바꾼 정치”이며 “향연에는 다양한 정치적 시그널과 메시지가 가끔은 명시적으로, 묵시적으로 포함된다”. 당시 북미 정상 간의 회담에 와인잔에 생수가 채워진 것을 보고, 니시카와 메구미의 글이 떠올라 필자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었다. 결국 그가 옳았다.


버지니아 주 샬로츠빌에 위치한 트럼프 와이너리의 입간판. 트럼프 와이너리 트위터


트럼프 대통령은 2011년에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 있는 와이너리 클루기 에스테이트(Kluge Estate)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이전 소유주였던 퍼트리샤 클루기는 경기 침체로 갈수록 와이너리 경영이 어려워지자 트럼프에게 와이너리를 헐값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전 IBM 이사였던 윌리엄 모제스와 결혼한 뒤 배우자와 함께 1999년에 그녀의 이름을 딴 클루기 에스테이트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종자돈은 전남편인 억만장자 존 클루기와 이혼하면서 받은 위자료로 추정한다. 퍼트리샤 부부는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동안 와이너리의 기반을 닦고 괄목할 만한 성과도 냈지만, 종국에는 와이너리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오랜 친구였던 퍼트리샤의 어려운 사정을 전해 듣고 자신의 특기인 ‘거래의 기술’을 발휘했다. ‘단돈’ 750만달러(약 80억원)에 포도밭과 부속 시설까지 몽땅 인수한 것이다. 대통령에 출마하기 전에는 와인 광고에 직접 출연하는 열성도 보였다. 지금은 그의 셋째아들인 에릭 트럼프가 와이너리를 맡아 운영한다. 참고로 트럼프 와이너리가 있는 버지니아 주는 1807년 미국 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이 처음으로 포도나무를 식재한 곳으로,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와인을 많이 생산한다.

이후 트럼프 와이너리(트럼프 빈야드 에스테이트)와 트럼프 와인은 언론에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여러 ‘사건’이 있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한다.

먼저,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나 밀뱅크 사건’이 유명하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데이나 밀뱅크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식사 장면을 생중계해야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되면 내 칼럼이 실린 신문을 먹어버리겠다”라는 공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유명 요리사인 빅토르 알비수가 만든 ‘9가지 풀코스 신문 요리’를 먹으면서 트럼프 와인 2종을 곁들였다. 맛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겪을 고통에 비하면 그다지 고통스러운 맛은 아니”라며, 트럼프 와인은 “휘발유보다는 훨씬 나은 맛”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일화도 있다. 오바마 역시 와인 애호가로 유명하다. ‘오바마 와인’으로 알려져 불티나게 팔린 와인이 있을 정도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 와인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5달러짜리 정도의 와인에 자신의 이름을 단 라벨을 붙여 50달러에 팔고 있다.” 사실 와인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을 한 것으로, 특유의 재담이 ‘뿜뿜’하는 평이었다.


2016년 3월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는 미시간ㆍ미시시피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뒤 플로리다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골프클럽에서 열린 간담회(위 사진)에서 트럼프 브랜드를 내건 와인과 스테이크용 고기, 물, 잡지 등을 전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러거나 말거나 트럼프는 경선에서 승리했고, 그는 자신의 골프장에서 트럼프 상표가 붙은 상품을 연단 양쪽에 높이 쌓아놓고는 기자회견을 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게다가 “트럼프 와인이 미국 동부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에서 생산”된다며 깨알 광고까지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트럼프 와이너리에서는 2019년 직원 채용 공고를 냈으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인 노동자는 단 한 사람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만 지원해, 29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직원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이는 그간 트럼프가 주장해 온 미국인 고용정책과는 다른 결과였기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도 갈등을 겪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프랑스는 우리의 위대한 IT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려 한다”며 “누군가가 미국 IT 기업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고국인 미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마크롱의 어리석음에 상응하는 조치를 곧 발표할 것”이라며 “나는 그동안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보다 좋다고 생각해 왔다”고 썼다. A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산 와인에 대한 보복관세 구상을 이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프랑스 와인을 좋아한다”며 애매하게 답변했다고 한다.

아무튼 미국과 프랑스는 일단 숨을 고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올해 말까지 디지털세 부과를 연기하고 미국도 프랑스 와인에 대한 보복 관세를 미루기로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여러 와인. 트럼프 와이너리 트위터


그렇다면, 트럼프 와인은 과연 어떤 맛일까? 팔자에 ‘와인살’이 강한 필자로서는 숱하게 입방아에 오르내린 그 와인 맛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수하기 한 달 전에 클루기 에스테이트를 방문했다는 목금토 식탁의 소믈리에 겸 셰프인 이선용 씨의 평은 이렇다. “와이너리의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와인 품질도 기대 이상이었어요. 그 당시 트럼프가 와이너리를 인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인은 바뀌겠지만 와인 품질은 유지되길 바랐습니다.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Kluge’를 ‘클루기’라고 발음하라고 하더군요.”

맛을 보기에 앞서 자료를 찾다 보니, 트럼프 와인은 전 주인이 운영할 때부터 미국 국내뿐 아니라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Best Sparkling Wines in the World’를 수상한 적도 있다. 지금도 와인스펙테이터나 디캔터와 같은 와인 전문지와, 제임스 서클링을 비롯한 여러 와인 평론가 사이에서도 좋은 평을 받는다.

2019년 6월 트럼프 와이너리의 와인 4종이 국내에도 수입됐다. 아쉽게도 한정 수입이라 지금은 국내시장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이리저리 수소문해 ‘트럼프 와이너리 카베르네 소비뇽 2015’를 어렵게 구했다. 와이너리에서 제공한 정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트럼프 와이너리 카베르네 소비뇽은 버지니아 주 몬테첼로 AVA에 속한 여러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선별하여 블랜딩해 만든 와인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를 진행하고,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하여 과일 및 오크 향이 조화로운 와인이다. 특히 포도나무 한 그루 당 평균 2~3송이만 제한하여 수확해서 집중력과 복합성이 매우 우수하다.”

와인잔을 기울여 색부터 살펴봤다. 와인 상태는 맑고, 진한 루비색이다. 블랙체리, 푸룬, 블랙커런트와 같은 검은 과일향과 바닐라와 삼나무향에 이어 달콤한 향신료와 초콜릿, 감초향과 미세하지만 담배향도 코와 혀에서 동일하게 느껴졌다. 풀바디에 입안을 꽉 조여주면서도 거칠지 않은 타닌을 지녔다. 향과 맛의 강도나 복합성과 균형도 기대 이상이었다. 여운도 꽤 지속됐다. 한마디로 맛이 좋았다.

필자가 구한 와인은 시음 적기로 막 접어들었고 구조가 탄탄하여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은 더 숙성할 수 있어 보였다. 이 정도면 밀뱅크나 오바마의 맛 평가가 그러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휘발유”나 “5달러”에 비할 맛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와인은 죄가 없다. 거짓말을 하는 건 사람이지 와인이 아니지 않는가.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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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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