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파크스의 만년의 슬픔(8.31)
1955년 로자 파크스(Rosa Parks, 1913~2005)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과 흑인 시민권 운동의 기폭제가 된 뒤 직장을 잃었고 백인들의 위협에 쫓겨 1957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이사해야 했다. 이후로도 그는 재봉사로 일하며 인권운동에 앞장섰고, 1965~1988년 미시건 주 민주당 하원의원 존 콘니어스(John Conyers Jr.)의 비서로 일했다. 은퇴 후 그는 자기 이름이 붙은 거리(Rosa Parks Boulevard) 인근의 검소한 셋집에서 말년을 보냈다.
1994년 8월 31일, 그가 '내 삶에서 가장 슬픈 일'로 기억하게 된 사건을 겪은 것도 그 집에서였다. 저녁 8시 무렵, 조지프 스키퍼(Joseph N. Skipper)라는 28세 남자가 만취한 상태로 집에 침입했다. 밥 사 먹게 몇 달러만 달라던 그는 파크스가 지갑을 열자 지갑을 통째 빼앗았다. 81세의 파크스는 저항하다 맞아 얼굴이 퉁퉁 붓는 부상을 입었다. 지갑에 든 돈은 53달러였고, 스키퍼는 흑인이었다.
당시 그 흑인 동네에서 '영웅 로자'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스키퍼는 경찰 조사에서 '그가 그인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파크스는 "그렇게 맞아본 건 난생 처음"이라면서도 범인을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내 이웃 중에 돈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을 때릴 수 있는, 마음 병이 든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모쪼록 그가 치료든 뭐든 잘 받아 새 삶을 살기 바란다"고 말했다. 1988년 부정맥으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는 등 건강도 썩 좋지 않았던 파크스는, 직후 변호사 등의 성화에 못 이겨 중산층 고층 아파트로 이사했다. 스키퍼는 8~1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지난 3월, 54세의 스키퍼는 5개 중죄를 저지른 혐의로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Grand Rapids) 경찰에 다시 체포됐다. 독거 노인의 집에 불법 침입해 강절도를 벌인 혐의였고, 유사 범죄로 켄트카운티에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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