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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말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전집에 실린 '선서'일 것이다. 의사의 사명을 담은 이 선서에서 히포크라테스는 '환자 최우선'을 거듭 강조한다. "환자에게 도움 된다고 생각한 처방을 따를 뿐 그에게 해를 끼칠 처방은 절대 따르지 않는다" "오로지 환자를 돕는 일에만 힘쓰겠다"며 히포크라테스는 자신이 "이 선서를 계속 지킨다면 일생 모든 사람에게서 항상 존경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정신을 계승하며 일부 내용과 표현을 현대에 맞게 고친 제네바 선언이라는 의료인 맹세도 있다. 1948년 제2회 세계의사총회에서 채택된 이 선언은 그 뒤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새로 포함한 2017년까지 '환자 최우선' 정신에는 변함이 없다.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 배려"하며 "어떤 위협이 있더라도 의학 지식을 인권과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데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내 최초의 면허 의사는 1908년 첫 서양식 병원이던 제중원(濟衆院) 의학교에서 나왔다. 설립자 알렌의 뜻을 이어 22년 만에 조선인 의사 7명을 배출하는 에비슨 박사가 당시 졸업생과 나눈 이야기가 그의 전기에 나온다. 에비슨이 장래 계획을 묻자 학생들은 어려울 때마다 "졸업을 하고 개업을 하여 돈을 버니까"라며 다독이던 선생을 돌이키면서도 의외로 병원에 남아 후배를 가르치겠다고 한다. 에비슨은 "의사를 양성한 줄 생각하였더니 참다운 인격을 양성하였고나"라며 그들의 '남을 위한 책임감'에 감탄했다.
□대한의사협회가 26일부터 집단 휴진을 강행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궐기대회에서 "의사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할 방법이 많지 않아 진료에서 손 떼는 최종 수단을 선택했다"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했다고 무리한 행정조처가 가해진다면 무기한 총파업으로 저항하겠다"고 말했다. '요구 사항'을 내건 진료 거부는 말할 것 없고, 코로나 비상 시국에 환자를 돌보지 않겠다는 의사를 2,400년 전 히포크라테스는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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